‘당신에게도 학교는 희망인가요?’ 뽀꼬뽀꼬 마을에서 희망꽃학교를 세우고 있는 신문사 선배에게 온 편지의 제목입니다. 
 
 7~80%의 주민들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이 마을에서 선배는 학교의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고 있습니다. 선배는 당연하다는 듯이 누렸던 것들을 나누는 일을 하며 손쉽게 다닌 대학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학교의 주인은 누구냐?’ 한 지인이 내뱉은 질문에 손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원론적이고 근원적인 질문들은 손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곤 하니까요. 답을 기다린 질문이 아니었던지 침묵이 길어지기도 전에 그분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고 무겁게 말했습니다. 다년간 학교를 지켜본 그분의 말이라 손쉽게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도 오월의 녹음이 얕게 깔린 교정을 거닙니다. 잡목들이 교정을 뒤덮듯 학내는 다양한 일들로 소란스럽습니다. 그 속에서 기자는 예측되고 반복되는 좋은 일보다는 예측하지 못한 악운에 눈과 귀를 열곤 합니다. 무심코 밟는 단단한 벽돌보단 보기 싫게 깨진 벽돌에 눈이 가는 것처럼 말이죠. 선배가 뽀꼬뽀꼬 마을에서 희망꽃학교의 벽돌을 쌓아올리고 있다면, 저는 중앙대학교에서 벽돌이 어떻게 쌓이고 있는지, 혹 깨진 벽돌은 없는지 살펴보며 대학을 키우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지난주 중대신문에선 김창인씨의 자퇴 사실과 LINC사업 선정을 중점적으로 기사화했습니다. 그 사건과 기사화된 신문을 보고 제적 당할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퇴학을 결심한 것이 아니냐는 학내 비판 여론도 있었습니다. 이어 대학이 사활을 걸고 따낸 LINC가 너무 작게 다뤄진 것이 아니냐는 아쉬운 목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는 많은 이들은 본인이 쌓은 벽돌이 갖는 무게를 쉽게 간과하곤 합니다. 대학본부가 쌓은 벽돌, 교수들이 쌓은 벽돌, 그리고 학교의 주인이 쌓은 벽돌로 만들어진 교정을 거닐면서 그 노력을 손쉽게 잊곤 하는 것 같습니다. 대학의 깨진 벽돌에만 눈과 귀를 연 기자처럼 말입니다. 기자의 업도 결국 벽돌을 쌓는 일이라는 걸 잊었던 걸까요.
 
 중앙대는 교육·연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비단 대학본부만의 일은 아닙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더욱 숨 가쁘게 달려왔던 건 교수나 학생들이었습니다. 깐깐한 학사체계, 교수평가제도에서 수업을 듣고 연구를 한 건 언제나 학생과 교수들이었습니다. 결국 손쉽게 외면해버린 벽돌들은 나나 지인, 혹은 동문과 교수님들이 쌓은 벽돌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중앙대의 많은 업적들은 학생과 교수들이 일궈낸 것입니다. 뽀꼬뽀꼬에서 한 장 한 장 벽돌을 올리며 학교를 짓는 선배처럼 저 역시 수많은 이들과 함께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그 벽돌 한 장의 무게를 손쉽게 비난하거나 외면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중대신문, 넘치지도 흔들리지도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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