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완벽주의자 선우는 자신을 죽이려던 강 사장 앞에 선다. 그리고 묻는다. “저한테 왜 그랬어요?” 짧지만 강렬한 질문에 강 사장은 답한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 <달콤한 인생>의 이야기다. 답변을 듣고자 숨가쁘게 달려 온 선우에게 건낸 강 사장의 답변은 친절하지 않다. 조직 전체를 상대로 벌인 전쟁 끝에 들은 해명치곤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재차 ‘진짜 이유’를 묻는다. 그리고 강 사장을 쏜다. 모멸감을 느꼈다는 해명으론 납득할 수 없는 선우와 모멸감 이상으로 감정을 설명할 수 없는 강 사장의 최후다.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라는 32세 청년은 폭탄 테러로 8명을 숨지게 하고 노동당 청년캠프가 열리고 있던 섬으로 건너가 69명을 사살했다. 학창 시절 괴롭힘을 당하던 그를 파키스탄계 이민자 친구가 구해줬을 때 이민자가 자신을 도운 데 ‘굴욕감’을 느끼고 세상을 증오하게 됐다는 것. 수치심과 굴욕감은 때론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다.

  모멸감은 대체 무엇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지배하는 이 정서를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저자는 ‘헝그리 사회에서 앵그리 사회로’ 넘어 온 한국에서 ‘모멸감’이 사회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가를 다양한 사료로 증명한다. 국가 경쟁력은 높아졌지만 혹독하게 경쟁하면서 치러야 하는 사회적 부작용 역시 늘어난 한국에서 모멸감을 주고 받는 구조를 명료하게 해명해낸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젠체하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한 문장,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생소한 클레식과의 결합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삶을 지배하는 숨은 제왕을 살펴보고픈 이는 부록으로 실린 CD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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