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퇴 후 무엇을 할지 묻는다면 나는 앞으로 대학이 무엇을 할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것은 모두의 역할이자 몫이다.”


  나른한 중앙대의 일상에 균열이 발생했다. 수업을 들으러 가던 학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교직원들이 눈길을 두었다. 김창인씨의 자퇴선언 때문이다. 그는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기에” 학교를 그만둔다고 선언했다.

-정의가 없는 대학이란 무슨 의미인가.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탄압받는다. 그러다보니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자연스레 사라져갔다. 이제는 정의를 고민하는 것이 귀찮고 부담스러운,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돼버렸다. 그런 대학의 실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학교를 비판하는 대자보는 철거당하고 학교 행정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면 징계를 받는다. 정권 비판에 앞장서던 교수는 뚜렷한 기준 없이 재임용에 탈락했다.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논쟁할 수 있어야 하는 대학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대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인가.
“대학의 본질은 교육이고 본연의 목적은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있다. 단순히 지식 전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떤 가치와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 사고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러한 배움을 위해선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비판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학을 너무 신성시하는 건 아니냐.
“현실과 담을 쌓자는 건 아니다. 시대가 요구한다면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앙대는 취업 등의 다른 목적으로 인해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학생들에겐 오로지 한가지 길로만 걸어가라고 요구할 뿐이다. 심지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대자보가 떼어지고 행사를 불허하기도 한다. 사상의 자유는 헌법으로도 보장돼 있는 권리다. 정치적이기 때문에 금지한다는 논리 자체가 더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대학본부는 대자보 철거 이유를 행정실이나 학생지원처에서 찍어준 도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학본부가 직접 만들고 적용하는 학칙에도 게시물 부착은 신고제라고 명시돼 있다. 허가제가 아니란 말이다. 자퇴를 하며 붙인 대자보도 신고를 하기 위해 도장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대자보 내용을 검열하고 검증하는 셈이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했다. 줄곧 구조조정에 반대해왔는데 취업률을 올리기 위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는 뜻인가.

“구조조정을 평생 안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목적과 방식의 문제다. 기존 구조조정은 쉽게 말해 돈이 되지 않는 학과, 취업률이 낮을 것 같은 학과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절차상에도 문제가 있다.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적어도 폐지 대상 학과들과 사전에 이야기해보는 토론 과정이 필요한데 기본적인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2010년 벌인 반대시위로 중앙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의견이 있다.
“학교가 징계를 내린 이유도 그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명예훼손은 검증한다거나 객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대학본부가 중앙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성원들의 의견은 물론 학칙까지 외면하고 무시해가면서 구조조정을 하는 방식은 스스로 대학으로서 품위를 포기하는 행위였다.”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문제제기로 들린다.
“그렇다. 지금의 대학은 기업운영의 마인드로 학문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다. 강의시수 개편으로 교과목이나 최대 개설 학점이 줄어든 것도 대학의 기업식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으로 들리는데.
“이전 재단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던데 물론 그건 아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누가 재단이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기업 역시 재단이 될 순 있다. 하지만 기업이 운영되는 방식과 대학이 운영되는 방식은 당연히 다르다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대학은 대학답게 운영하면 된다.”

 

지난 4월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가 3번째로 무산됐다. 인문대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와 선거지도위원회(지도위) 간의 공방도 끝이 났다. 문제가 된 것은 피선거권 제한 규정이다. 선거를 주관하는 선관위는 김창인씨를 후보자로 승인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선거 시작과 동시에 인문대 학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지도위는 선거지도내규를 들어 후보자 승인을 문제 삼았다.  

-지도위가 징계전력과 학점미달을 문제 삼아 학생회장 출마를 제한했다.
“내가 아는 학생대표자들 중 지도위가 내세운 내규의 자격요건을 미달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2010년 이후만 치더라도 학점 미달이나 징계를 받은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학생대표자를 해왔다. 특정 대상에게 특정 조항만 적용한 점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보인다.”

-학점이 낮은 학생이 학생대표자로 자격이 있는가.
“학점 부분에서 내가 부족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과 원칙은 달라야한다. 학칙은 법이다. 법은 현실이 아니라 원칙이다. 현실에서는 학교를 나오기만 하면 2.0이라는 학점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원칙이 될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수강정원의 5%에게 D+ 이하의 학점을 의무적으로 부과해야 하니 모두가 수업에 성실히 임할지언정 누군가는 D학점을 받아야만 한다. 학점이 2.0 이하라는 조건만으로 과연 그 사람이 대표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원칙은 그래선 안 된다.”

-지도위가 학생회 선거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법을 준수해야하고 학생이라면 학칙을 지켜야한다. 동의한다. 하지만 학생회 선거는 학생자치다. 자치는 스스로 다스리도록 자유롭게 두는 것이다. 그 안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그런 경험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자치를 통한 교육이다. 자치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학교를 떠났다. 그가 자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자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줄곧 말했듯이 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지금 중앙대의 현실은 어떤가. 앞에서 말한 문제들 때문에 자퇴를 한다는 건 사실 굉장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이후에 그 학생이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대학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가만히 있는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까”

-대학을 대학답게 만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나.
“우리 모두의 역할이자 몫이다. 모두가 징계를 받으라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한걸음씩의 용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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