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복거일 저/문학동네/200쪽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는 고국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 동안 바다 위를 방랑했다. 외눈박이 거인을 눈멀게 해 신들의 미움을 사기도 하고, 세이렌의 노랫소리 때문에 부하들을 잃기도 했다. 누구는 오디세우스의 장난기 때문이라고 다른 누구는 신들의 질투 때문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으로 그의 세상에 대한 관심과 지적 호기심을 생각해본다. 사람의 생각이 닿을 수 있는 끝, 그 너머를 환히 빛내고 있는 지식에 대한 오롯한 욕망이 오디세우스를 바다 위에서 모험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현이립도 그랬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 펴냄)의 주인공 현이립은 쇠약한 오디세우스였다. 문학가이자 지식을 쫓는 사람으로서 그의 살에 닿는 모든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고 난 후의 몇 억년 뒤의 일어날 일도 알고 싶어 했다. 지식은 갈수록 갈증을 더했다. 간암 판정을 받아 죽음이 코앞에 찾아온 뒤로 더욱 더. 노쇠한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그렇게, 아내가 집을 비운 날 아침, 뒷산의 짙어진 봄빛을 보고 집 앞 불광천을 출발해 가장 멀리 떨어진 가양대교까지 갔다 오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 일러스트 계민경 학생
 
 산책 동안 현이립의 머릿속은 멈추지 않는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여자아이를 보며 사회의 진화를 생각하고 다리 밑에서 화투 치는 노인들을 보며 늙어가는 문명을 떠올린다. 산란을 위해 불광천을 뛰쳐 오르는 물고기부터 옆 풀숲의 조막만 한 냉이 하나까지도 그에게 세상의 영감을 불어넣는다. 내세의 뒤편으로 저물어가는 운명임에도 질문은 계속된다. 그렇다. 그는 생각의 수평선 너머를 열망하고, 수평선 너머가 절벽일지라도 노를 저어가 손을 뻗어보는, 오디세우스의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따라 걷는 산책길 마다마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심어 놓는다.
 
 사실 이 모험은 현이립의 마지막 산책이자 마지막 뒷모습이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는 현이립이라는 인물의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이다. 1988년 출판된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에서 20대 후반의 포병 관측장교였던 현이립이, 2006년 출판된 『보이지 않는 손』에서는 30년 세월을 훌쩍 건너뛴 50대의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로 등장한다. 끝으로 그는 직업적 소명에 따라 ‘한가로운 걱정’을 하는 이로 그려진다. 바로 이 세 작품이 ‘현이립 자서전 3부작’인 셈이다.
 
 “이 작품은 어떤 뜻에선 나의 자서전이다.” 위 작품들을 쓴 소설가 복거일은 『보이지 않는 손』 작가의 말에서 대뜸 밝혔다. 사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씀으로써, 복거일은 자신의 자서전 또한 마무리했다. 현이립의 모습은 복거일을 똑 닮아있다. 간암 판정을 받은 것부터 세상의 원리와 방향에 대한 걱정, 심지어 보수적인 복거일의 마인드까지.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다. 한 남자의 일대기적 소설을 26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완성해 냈다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삶을 견고히 쌓아놓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주인공의 산책길은 단순히 작가의 삶만을 닮아 있지 않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똑같다. 성큼 다가온 계절을 느끼고, 따뜻해진 교정을 거닐면서 우리를 스쳐 가는 세상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고민하는가. 이 문장을 훑고 있는 와중에도 당신의 머릿속 한편엔 한가로운 걱정들이 가득 차있지 않은가. 당신의 걱정이 현이립의 걱정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확인해보라. 이 책이 곧 당신의 자서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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