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쇼스키 남매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우리가 믿는 현실 사회는 디지털로 만들어진 환영으로, 실제 사회는 음울하고 차가운 기계로 뒤덮힌 디스토피아로 그려낸다. 그리고 주인공 ‘네오’는 진실에 눈을 뜰 수 있는 빨간 약을 택하고 기계사회를 구원하려 분투한다.
 
 워쇼스키 남매의 두 세계가 진짜와 가짜로 명확하게 구분된다면 토마스 핀천의 세계관은 좀 더 모호하고 어두워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기 힘들다. 핀천은 현대 사회 골목의 막바지에 있는 죽음, 무질서, 획일화, 파국과 같은 주제를 날카롭게 저며 내 『느리게 배우는 사람』(창비 펴냄)의 배경으로 삼았다. 각 소설의 주인공은 때때로 나였거나 주변 현대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핀천이 환상을 묘사하는지 현실을 묘사하는지 찬찬히 읽어봐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네오’와 같은 구원의 메시지나 희망은 아예 없거나 매우 흐릿하게 점멸할 뿐이다. 
 
 ‘이슬비’의 라대스 러바인은 허리케인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함에도 무감각한 채 일상에 매몰되는 인물로 이는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죽음소식에도 평안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다. 또한 ‘로우랜드’에서 정적인 삶을 유지하면서 자유를 향한 몽상을 즐기는 데니스 플랜지는 일상에서의 도피를 꿈꾸는 우리 군상들의 다른 모습이다. 여기에 데니스 플랜지의 탈출이 자본주의의 종착지인 쓰레기장에서 머문다는 결말은 그 일탈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 안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작가의 모습도 확인 할 수 있다. ‘로우랜드’의 데니스 플랜지는 쓰레기장에서 어린 소녀를 발견해 전환의 기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은밀한통합’에서 팀 싼토라와 그 친구들이 흑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토마스 핀천이지만 그는 책 서문에서 자신이 쓴 단편 소설을 다시 읽을 때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작품을 쓰는데 있어 잘못 이해한 사투리를 플롯의 중심으로 사용하거나 심지어 ‘유치하거나 무책임한 구절’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소설 텍스트 외에 서문에서 작가가 과거의 작가 자신과 소통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핀천은 과거의 자화상인 작품들을 미화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어린 친구’ 삼아 이 책을 그대로 펴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인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과거의 미숙한 자기 자신이다. 물론 겸손의 표현이겠지만 이러한 그의 의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과거 생각들을 되돌아볼 수 있다. 다소 거칠지만 무거운 문제의식을 순수하게 던지는 과거 우리의 모습에서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고 배우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