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들이 지배하는 사회구조는
잉여들을 만든다
 
문화와 연대를 통해서 패자가
아닌 새로운 주체가 되다
 
 
[잉여사회 - 진단]
 
  <말죽거리 잔혹사>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하다. 주인공 현수는 대한민국 학교 X까라며 제도로서 자리 잡은 공교육을 쿨하게 거부한다. 그는 이소룡을 동경했고 쌍절곤을 휘둘렀다. 하지만 기성세대였던 아버지는 그에게 잉여인간이라고 했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 하는 사회의 루틴(Routine)을 거부하면 잉여인간이 되는 사회다. 소위 제도권이라 불리는 곳에 적을 두지 못하거나 그렇게 되길 거부한 모든 이들에게 ‘기성세대’는 잉여라고 했다.
 
스스로를 잉여라 부르는 사람들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잉여라고 한다. “나 그냥 잉여야” 라는 말이 의사소통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현실은 잉여라는 자기 부정 개념이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인구의 70%가 대학을 가서 그들의 대부분이 대기업집단의 화이트칼라가 되길 원하는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잉여가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규칙이 지배하는 사회는 잉여의 양분이다. 
 
  잉여는 불필요한 것들이다. 신진욱 교수(사회학과)는 “우리 사회의 승자들은 패자들을 잉여로 취급한다”며 “이러한 시선이 패자들의 마음속에 '내면화된 타자'로 자리 잡아 스스로를 그런 시선으로 보게끔 하게 한다”고 말했다. 적은 일자리, 비정규직과 같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지위는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자존감은 낮아졌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패자가 아닌 잉여들  
 
  월간잉여에서 주관한 잉여사생대회에 온 사람들 역시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고 있었다. 명문대를 나왔지만 언론사시험에 수없이 떨어지며 돈벌이가 되는 일을 찾고 있다는 월간잉여 최서윤 편집장, 음악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보험설계사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 김지연씨, 언론을 공부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인턴면접에서 떨어지고 1인 미디어를 운영 중인 조태희 학생. 이들의 공통점은 각자의 분야의 제도권과 그것에 존재하는 기득권에서 자의로 타의로 멀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스스로를 잉여라고만 칭하며 절망과 좌절에 빠지지 않는다. 잉여들은 이야기 한다. 자신을 잉여로 만든 원인에 대해 생각하며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꼰대들이 “너 왜 취직 못 해?”라고 물어보면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열심히만 해서 될까”라고 의문하는 것이 그들의 본질이다. 의문은 주류와 대비되며 새로운 주체를 탄생시킨다. 월간잉여의 독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주호 학생은 자신만의 인쇄매체를 꿈꾼다. 언론을 공부하는 조태희 학생은 주류언론이 깔아놓은 비단길을 거부하고 SNS를 통해 1인 미디어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최서윤 편집장은 노들섬 텃밭을 일구며 잉여들의 돌파구로 일차 산업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사회가 만들어낸 패자들은 대안 주체로서 꿈틀거리고 있다.     
 
저항으로서의 잉여, 연대로서의 잉여 
 
  잉여는 저항의 또 다른 표현이다.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승자들은 패자들을 잉여취급하고 바라보지만 결코 잉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미화하고 왜곡한다. 잉여라는 말에 숨겨져 있는 사회현실이 드러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그 자체로 저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들 텃밭의 잉여들은 결코 자기 탓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월간잉여를 통해 사회와 국가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조태희 학생은 “우리가 계속 소통하고 모인다면 불필요하다는 잉여의 사전적 의미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진욱 교수는 “잉여문화가 건설적인 대안과 연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잉여가 아닌 무엇이다’고 말할 수 있는 긍정적 자기정체성과 ‘비난받아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무엇이다’라는 전복적 프레임의 키워드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노들 텃밭에 모인 잉여들은 이미 새로운 잉여를 생각하고 있다.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고용 없는 성장을 비판하며 농업과 같은 일차 산업을 통해 모두가 쓸모 있는 인력이 될 수 있다는 최서윤 편집장, 주류미디어에 맞서 당당히 1인 미디어를 만들어가며 언론인의 길을 걷고 있는 조태희씨가 그러하다. 그들은 이미 잉여로서 주체이고 주체로서 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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