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예술대 시절, 문예창작과 교수를 했던 서정주의 시 가운데 「바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렇게 끝난다. “눈 떠라. 사랑하는 눈을 떠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 알래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일제 강점기, 비탄에 잠겨 있는 조선의 학도들에게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로 시야를 넓히라고 권유하는 이 시는 친일시를 쓰기 전의 작품으로 애국애족사상과 사해동포사상이 충만해 있다. 고통스런 현실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꿈을 다른 대륙에서 펼쳐보라는 이 시의 어조는 호방하고 시상은 위풍당당하다.
 
  학기말이 오면 학생들에게 방학 계획을 묻곤 한다. 그리고 학기초가 되면 지난 방학 때 주로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물어본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재차 질문을 하는 학생은 해외여행을 하러 가겠다거나 갔다 온 학생이다. 어느 나라로 간다고? 얼마 동안 가있을 거라고? 어디를 보고 오겠다고? 경비 조달은 어떻게?
 
  두 명 여학생이 1년 내내 아르바이를 해서 경비를 모아 남미 각국을 헤집고 다녔다니, 그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 호주에 가서 워킹 할리데이를 하며 돈을 모은 남학생이 중고차를 구입해 호주 일대를 여행하고 온 이야기, 일본 전국을 시골까지 샅샅이 훑어보고 온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무대를 보고 온 이야기는 따로 밥을 사주며 들어도 재미가 있다. 나는 이런 선배들의 무용담(?)을 재학생들에게 들려주며 말한다.
 
  “세계는 넓고 볼 것은 많다. 한창 젊을 때인 지금 안 봤는데 나중에 직장생활하면서 볼 수 있을까? 결혼해 가장이 되어, 아이가 있는 주부로서 열흘 이상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고흐의 그림이 좋으면 직접 가서 봐라. 문학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골방에서 글을 쓰는 시대는 지났다. 이번 방학 때는 어디든 가라.”
 
  친척이 외국에 살면 너는 복 받은 존재라고 말해준다. 대학생 때 아니면 못 와볼 것 같아서 여기에 왔다고 하고 잠만 며칠 재워달라고 해라. 젊은 나이에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평생의 재산이 될 것이다. 배낭여행에 그리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잠자리와 음식이 좀 불편하겠지만 그 모든 고생을 상쇄할 만큼 탐구열과 자신감이 넘치는 20대가 아닌가. 민주화의 진통을 겪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우리 세대는 해외여행이 사치였고 특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두 달이 넘는 방학 동안 컴퓨터나 텔레비전 화면을 들여다본다고 머리에 정보가 쌓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얻는 정보는 대개 죽은 지식이다. 외국에 가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라.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보면 그 나라의 역사를 알 수 있고, 성당과 사찰에 가면 그 나라의 종교를 알 수 있다. 삶의 양태와 산업의 구조를 살펴보라. 자연을 어떻게 이용하고 자연에 어떻게 적응해서 살아가는지 눈으로 확인하라. 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이다.
 
 
이승하 교수
공연영상창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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