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 비추어볼 때 어렸을 때와 현재의 내가 히어로 영화를 보는 이유는 사뭇 다르다. 어렸을 땐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롤모델이었다. 배트맨이 되고 싶어 억만장자의 꿈을 꿨고 태권도 배우기에 열심이었다. 지금은? 롤모델이 아닌 선과 악이 모호한 현실로부터 도피시켜주고 나 대신 통쾌하게 악을 무찔러주는 대리인쯤 될까. 어찌됐든 히어로 영화를 보고 난 후 감상평은 ‘그놈은 멋진 놈이었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얼마 전 또 한 편의 히어로 영화를 봤는데 제목이 ‘김창인 학생 자퇴 선언’이다. 무언가 비범한 주인공 김창인 학생이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강력한 적에 맞서 싸우다가 모두를 위해 희생하는 내용이다. 평점 9.8이다. 감동적이고 멋졌다.
 
  김창인씨의 행동을 비꼬거나 격하하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다.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다. 난 김창인 학생 자퇴 선언이란 영화의 상영관에 입장했다. ‘나와는 무관한, 비범한, 용감한 영웅이 강력한 악에 맞서 싸우다 스스로를 희생했구나.’ 나를 대신해 판단을 내려주고 맞서 싸워주는 영웅의 탄생이었다.
 
  같은 상영관에 들어갔지만 나와는 정반대의 감상평을 내놓은 사람도 적지 않아 보인다. 김창인 학생의 자퇴 선언은 진정성을 의심해 볼 만한 정치적 쇼였고 중앙대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중앙인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글이 김창인 학생을 포함한 소위 운동권에 대한 혐오다. 아마 그들은 김창인 학생 자퇴 선언을 운동권이라는 악이 대학본부의 신념에 못 이겨 나가떨어진 내용의 영화로 이 사건을 기억하지 않을까.
 
  나는 어제부로 상영관에서 나왔다. 당신도 상영관에서 나와 달라. 김창인 학생 자퇴 선언을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메시지다. 사람과 그 사람이 던진 메시지를 구분하지 못해 그저 영웅으로만 남아있는 사례는 고려대 김예슬 학생 자퇴 선언만으로 족하다. 김예슬씨의 용감한 모습만 남아 있고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기억 속에 없지 않나. 사람이 미래인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이 미래다. 영웅적인 행동을 한 김창인씨에 대한 우상화 혹은 그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그가 던진 메시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대학의 기업화’, ‘비민주적 대학운영’에 대한 비판이다.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이 대학을 받아들였는지 고민할 시기가 와도 한참 전에 왔다는 경고음이다. 중앙대는 2008년 이후 운영을 효율화한다는 명목 하에 의사결정 과정을 단순화시켰고 현재 중앙대의 의사결정권은 이사회만 가지고 있다. 중앙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특정 인물, 특정 부서에 의해 결정돼왔다.
 
  학문단위 구조조정, 교수 업적평가 개혁안 그리고 가장 최근의 인문대 선거 무산과 학칙 개정안 논란까지 모두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 기인했다. 이미 식어버린 떡밥이고 진부해져버린 문제의식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개선된 바 없었고 계속 이름만 다른 이슈로 반복돼왔다. 너무 일상화돼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더이상 시간낭비 하지 말아달라. 이제 그가 던진 메세지에 주목할 때다.
 
이시범 대학보도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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