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까지 따라온 못 말리는 커플들
  • 김민선 기자
  • 승인 2014.05.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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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CC(Campus Couple)는 가라. 고등학교에서 중앙대로 본거지를 옮겼을 뿐 장소가 바뀌어도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더욱이 새내기였던 이들은 마냥 반짝이는 눈으로 새로운 환경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기묘한 인연을 가진 시민K들로부터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등학생 시절 인연을
대학까지 그대로

겉으론 티격태격이지만
자타공인 바퀴벌레 한 쌍
 
 
 
  PM10:00 
  입하(立夏)가 지나고 내리는 첫 비가 서울캠 교정에 내렸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내리는 비로 인해 한결 운치를 더한 서울캠이었다. 비가 오는 저녁 10시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찾아나서 기자는 우산을 쓴 채 발 걸음을 재촉했다. 걸음을 재촉한 건 학생들도 마찬가지 였다. 캠퍼스 곳곳에서 손으로 머리만 간신히 가린 채 서둘러 귀가하는 학생들, 건물 안으로 비를 피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기자도 기숙사로 뛰어 들어가는 학생들을 따라가 보았다. 비를 피해 들어간 기숙사 2층 휴게실에는 소파에 앉아 발장난을 치는 한 커플이 기자의 눈에 띄었다.
 
 
 
-두 분은 여기서 뭐하고 있나.
남, 여 음료수 마시고 있어요.
 
-학과 내 CC인가.
저는 정치국제학과이고, 남자친구는 경영학부에요.
 
-언제부터 CC였나.
전라도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고1 겨울방학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교제를 해왔어요. 지금 사귄지는 정확히 697일 된 것 같아요.
8!
7! 697일이 맞아.
 
-고등학교 때부터 CC였다는 말인가.
고등학생 때 저는 중어과고 남자친구는 영어과였어요. 남자친구가 그때 저 좋다고 따라다녔어요. 제 친한 친구가 영어과였는데 그 친구를 통해 남자친구도 알게 됐거든요. 친구랑 남자친구랑 같이 놀러 다니고 학원도 같이 다녔죠.
고등학생 때도 기숙사를 살아서 주로 학교에서 산책을 하며 데이트 했어요. 지금도 기숙사 안에서 이렇게 잘 만나요.
 
-중앙대에 같이 온 건 우연인가.
수능을 봤는데 둘이 함께 붙은 대학교가 중앙대밖에 없었어요.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이렇게 됐네요.(웃음)
 
-고등학생 시절 대학생활에 대한 둘만의 로망이 있었을 것 같다.
둘 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 같은 대학교에 왔으니 그 꿈을 이룬 셈이죠. 같은 대학이 아니더라도 서울로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명만 서울로 오면 좀 그렇잖아요.
사실 목표로 하는 대학은 서로 달랐어요. 저는 A대를 가고 싶었고, 여자친구는 B대를 가고 싶어 했어요.
 
-학창시절 학내에서 유명한 커플이었을 것 같은데.
고등학생 때부터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예쁘게 사귄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 때 이미 부모님도 다 알고 계셨고 같은 대학교에 오고 나서 더욱 저희를 응원해 주세요.
 
-같은 대학이 됐다는 걸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신기했어요. 사실 남자친구는 저보다 공부를 잘해서 더 좋은 대학교에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추가합격이라도 될 것 같았죠. 아무튼 전 ‘서울 간다, 대학 붙었다’는 마음에 그저 좋았어요.
남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정말 좋아했어요.
여 왜 겉으론 안 좋아했어?
 
-입학한 지 2달이 지났는데 대학생활에 만족하나.
저는 좋아요. 서울 와서 좋고, 대학교 와서 좋고, 더 이상 고3이 아니라 마냥 행복할 따름이에요!
사실 요즘 고민이 있어요. 고등학생 땐 항상 친구들과 같이 수업 듣고 밥 먹고 했으니 친구 걱정이 없었는데 여기 오니까 친구 걱정을 많이 해요.
 
-학과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지 않나 보다.
잘 어울리는데, 잠깐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문득 혹시 ‘나빼고 놀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렇지 않은데도 그런 걱정을 할 때가 있죠.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가 있다면.
맨날 같이 놀던 사람과 괜히 하루 안 놀면 불안해지는 것 같아요.
대학생활이 고등학교 때 생활과 많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 고등학교 3년 동안 같은 반, 같은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동고동락하잖아요. 유대가 굉장했죠. 그런데 여기 오니까 그때 같지가 않아요. 여기는 자기가 노력해서 인간관계를 챙겨야 하고, 먼저 연락해야 하지 않나요? 선후배 관계에 있어서도 먼저 다가가야 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그래도 정치국제학과는 유대가 강한 것 같던데.
학생 수가 적어서 그나마 나은 거죠. 그래도 전 조금 어려웠어요. 특히 밥 사달라고 하기가… 그런데 저 엊그저께 밥 얻어먹었어요!
 
-남자친구 분은 여자친구 만나느라 친구들끼리 한 약속을 못 지킨 적 있나.
많죠. 매일 그래요. 경영학부 학생회 활동도 하고 있는데 가끔씩 회식에 못가기도 하고 갔다가도 금방 나와요.
매일은 아니지.
사실 친구들끼리 미팅 얘기라도 하면 괜히 소외되는 느낌을 받아요. 친구들이 “너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뭘 끼어들려고 해” 이런다니까요.
 
-미팅은 아직 안 해봤나.
저도 안 해봤어요. 너만 안 해본 것처럼 말 하지마.(웃음) 사실 전 좀 해보고 싶어요. 새내기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잖아요. 남자친구도 해도 된다고 했어요. “난 안 하는 거지만 넌 해도 돼”라고요.
 
-서로의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제 짜증을 잘 받아줘요. 대단하죠. 제가 고3때 감정 기복이 엄청 심했는데 다 받아주고,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잘 알려줬어요. 그리고 남자친구가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줘요. 이 음료수도 남자친구가 사줬어요!
전 딱히 없는 것 같아요.(잠깐 침묵) 그냥 다 좋아서 하나만 못 고르는 그런 거 있죠. 아 그래요! 잘 웃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여자친구가 웃는 게 예뻐요. 귀여워서 볼 살을 꼬집고 싶어요.
 
 
 
  PM11:00 
  풋풋한 새내기 커플 덕분에 기자도 덩달아 훈훈해졌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서울캠 언덕을 따라 내려오니 중앙마루까지 발걸음이 닿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평소 음주가무를 즐기는 학생들로 가득차던 중앙마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중앙마루에서 조금 떨어진 교양학관 앞 벤치에서 남학생 두 명이 앉아 깡소주를 들이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실례지만 한국말 가능하나.
A, B 아, 예. 가능합니다. 한국인이에요.
 
-비가 오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나.
B 보시다시피 소주를 먹고 있었죠. 아직 4병째에요.
 
-두 분은 어떤 관계인가.
A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둘이 관심사가 비슷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친하게 지냈는데 우연히 같은 대학교를 왔네요.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 고등학교에서 서울로 대학 온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얘가 없었으면 외로웠을 텐데 가장 마음에 맞는 친구와 같은 대학에 와서 참 다행이에요. 점심 먹을 친구, 저녁 먹을 친구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한 거였어요.
 
-각별한 사이 같다.
A 각별한건 아니고.
B 각별하지!
 
-술 마실 땐 영어로 대화하나보다.
A 예, 제 주사가 이래요. 사실 우리가 이렇게 영어로 대화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어요.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같이 대화하던 사이였죠. 이젠 한국말로 얘기하면 어색해요.
B 청소년모의국제회의를 준비하는 동아리에서 이 친구를 처음 만났어요. 그때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사이가 대학까지 와서 이어질 줄 몰랐어요.
 
-영어를 굉장히 잘하시던데 글로벌리더전형으로 들어왔나.
A 아뇨. 이과 정시인데요.
B 전 글로벌리더전형으로 들어왔어요.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은 있나.
B 전 미국에 2년 정도 살았죠. 그런데 얜 없어요.
A 확실히 전 토종입니다. 서울, 대전에만 있었어요.
 
-영어를 잘하는 비결이 뭔가.
B 자기가 하기에 달린 거예요. 영어를 접할 수 있는 매체는 참 많죠. 드라마, 팝송, 할리우드 영화까지 정말 다양해요. 단순히 자막으로 접하는 것보다 맘에 드는 장면의 대사를 따라 연습하면 많은 도움이 돼요.
 
-어떤 매체를 말하는 건가.
B 미국에 있었을 때 TV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어요. 미국 리모컨엔 자막 버튼이 있는데 그걸 누르면 투박한 폰트의 자막이 뜨죠. 영어를 듣는 동시에 읽기까지 하니까 확실히 영어가 늘었어요. 처음엔 스펀지밥 같은 만화로 시작했지만 점점 NBC, CNN 뉴스까지 폭을 넓혀갔어요. 미디어로 접하는 영어는 재밌어서 배우기가 쉬워요.
A 전 대학 와서 저기 중앙도서관에 있는 E-lounge를 굉장히 많이 이용하고 있어요.
 
-지금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A 지금 2시간째 먹고있어요. 아까 원래 중앙마루에서 마시다가 2차로 술집에서 또 한 잔 했죠. 그리고 또 여기 다시 와서 먹고 있는 거예요.
 
-지금 이렇게 비가 오는데 왜 계속 여기서 먹나.
B 이 친구가 하소연하고 싶은 게 많대요.
A 고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대학생이 되니 하지 않던 고민을 하게 됐어요. 하지만 이런 얘기는 대학 와서 아무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었죠. 이렇게 마음 다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얘밖에 없네요.(웃음) 그런데 얘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A 실은 지금 취기가 올라서 서슴없이 말하지만 저도 평소엔 낯을 가리는 게 없지 않아 있어요. ‘완전 신입생이었던 3월 초로 돌아간다면 보다 넓게 친구를 사겨놨을 텐데’하는 후회를 하죠. 지금쯤 친한 친구들이 갈려서 끼리끼리 뭉쳐 놀기 시작하지 않나요?
 
-지금이라도 친해지면 되지 않나.
A 3월부터 대학 친구들을 두루 알아놨으면 지금 대학 생활하기가 훨씬 편했을 것 같아요. 또 수시 합격생들은 일찍이 만나서 친해졌는데 정시 합격생인 저는 그 틈에 들기가 힘들었죠. 먼저 합격한 친구들은 입학도 하기 전에 술자리 같은 친목모임에 몇번씩 참여해 봤을 텐데. 전 그런 친구들이 부러워요.
 
-학과 생활은 열심히 하는 편인가.
B 학생 수가 7,80명 되는 규모가 큰 학과라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웠어요. 좋게 보면 강제적인 모임도 적고 자유로운 편이죠.
A 제 학과도 규모가 커서 학과 생활보다는 학과 내 축구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이날 만났던 두 쌍의 남녀&남남 커플은 짧은 인터뷰로는 가늠할 수 없는 인연의 깊이를 자랑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맺어진 이들의 인연은 중앙대 교정에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앞에선 티격태격이지만 서로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이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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