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 우사단길
  • 김종민 기자
  • 승인 2014.05.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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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우사단길

▲ 우사단길의 구멍가게는 ‘수퍼마켓’이 아니라 ‘수퍼마켙’이다.


  한남동. 남쪽에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고 북쪽에는 남산을 등지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한남동은 사람들에게 흔히 부자동네라고 잘 알려져 있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빌라들이 곳곳에 있으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상위 0.1%의 부자들이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남동에서 이태원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 있다. 여전히 과거형에 머무르고 있는 길. 우사단길이 바로 그곳이다.

  우사단로, 우사단로 10나길, 우사단로 4길. 각종 포털사이트의 지도에서 우사단길을 찾아보면 수많은 우사단길이 나온다. 하지만 최근 매스컴을 ‘핫’하게 달구고 있는 그 우사단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사단로 10길(이하 우사단길)을 찾아가면 된다.

여전히 과거형에 머문
우사단길
  사람들이 자주 찾는 가로수길이 값비싼 향수라면 이곳은 투박한 흙냄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거리의 가게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청년들의 창의적인 감각이 눈에 띈다. 거리의 거친 느낌과 청년들의 팔팔함이 어루러져 색다른 우사단길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제일 처음 만날 수 있는 곳은 마을 안내소의 역할을 하는 ‘사원 앞 카페 벗’이다. 이 카페는 청년 창업 지원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결성된 ‘청년장사꾼’이라는 단체에서 만들었다. 이 청년장사꾼과 우사단길의 예술가들이 ‘우사단단’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격격월간 우사단』을 발행한다. 우사단길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탐방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격격월간 우사단』을 챙겨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우사단길의 이슬람 사원 뒷 계단에서는‘계단장’이 벌어진다.


『격격월간 우사단』에는 우사단길의 크고 작은 소식들이 담겨있으며 마을관계지도가 맨 뒷장에 실려 있다. 신문의 1~3면에서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우사단길과 이 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맨 뒷장에 있는 마을관계지도를 읽다보면 길을 걷다가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신문을 놓칠지도 모른다. 김경현 시인과 동네 강아지 순돌이는 라이벌 관계고 ‘노동연구소’라고 불리는 한 주민은 여러 이웃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웃음을 자아낸다.  

  조금 더 깊이 길 안으로 들어가면 낡고 허름한 간판을 걸고 있는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숙이네 분식’, ‘대성수퍼마켙’, ‘한진이발’. 녹슨 간판들이 오늘날이 6,70년대가 아닌지 착각을 가져다준다. 특히 한진이발의 최성옥 사장은 1968년부터 올해로 46년째 우사단길의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골들의 머리를 다듬어 주는 일흔을 넘긴 노이발사의 모습은 옛날 흑백사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다.

  노이발사의 오래된 이발소를 지나 왼쪽의 골목 아래로는 한남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골목에서 내려다보는 한남동과 한강의 경관은 저 아래 동네의 고층아파트에서도 볼 수 없는 값비싼 야경이다.


그곳을 걸으면
과거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날 것 위에
덧입혀진 싱싱함이
우사단길을 다시 만들었다.


  골목에서 빠져나와 우사단길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도깨비 시장이 나타난다. 도깨비 시장을 마주하는 순간 ‘정겹다’라는 생각이 든다. 도깨비 시장의 풍경은 흡사 시골의 할머니집에 내려갔을 때 할머니 손잡고 가는 시장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시장골목 한 편에는 배추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가게 안에는 물건을 내놓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날 것’을 좇은
젊은 예술가들
 우사단길에 과거의 느낌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1년 사이에 우사단길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우사단길에 신선함을 더하고 있다. 주로 홍대 등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더욱더 싼 작업실을 얻기 위해 찾아온 곳이 이곳 우사단길이다. 젊음이 거리에 스며들기 시작하자 죽어있던 거리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우사단길에 ‘20세기 싸롱’이라는 가게를 연 오세정 사장은 우사단길이 이렇게 변화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제가 들어올 때는 상업 공간이 저를 포함해서 3곳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어린 친구들이 많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도미노처럼 가게들이 생기게 되더라구요.”

▲ 20세기 싸롱의 네온사인이 우사단길을 밝힌다.


  변화한 거리의 한쪽에는 통통 튀는 매력의 공예품들이 쇼윈도에 전시돼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구제옷에서부터 나무로 만든 시계와 안경까지. 우사단길을 찾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청년장사꾼이 촌스러운 간판을 내걸고 운영하고 있는 ‘감자집’의 벽면에는 ‘우사단마을 주요인물 리스트’가 걸려있다. 인물들의 소개와 얼굴이 함께 걸려있는 이 지도에서 우사단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이웃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우사단길 깊숙한 곳에 작업실을 차리고 있는 도시공작소의 원흥재 도시건축가는 우사단길을 한마디로 ‘날 것’이라고 표현했다. 우사단길이 날 것 그대로의 상태였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이 싱싱한 재료를 요리하고 싶은 욕망이 들었을 것이다.

  현재 우사단길은 재개발의 바람에서 잠시 빗겨나 있는 상태다. 미래에는 어떻게 상황이 변하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우사단길은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느낌과 젊은 예술가의 싱싱한 감성이 더해져 기존의 길과는 색다른 길로 만들어지고 있다. 아직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가시기 전에 그리고 싱싱한 감성이 사라지기 전에 우사단길을 찾아 아직 사라지지 않은 과거와 앞으로 바뀌게 될 미래를 미리 맛봐도 좋을 것이다.

교통정보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출구 (도보 7분)
마을버스: 6호선 이태원역 3번출구 용산01번 (이태원역앞 승차, 이슬람사원 하차)
버스: 400, 110A, 405번 (이태원119센터 하차 도보 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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