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시간 손님들로 북적이는 카페 ‘통’의 모습.

 

  슬로푸드
  하루 세 번, 사람들은 ‘밥’을 마주한다. 밥을 먹는 이유는 다양하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즐거워서, 인간관계를 쌓기 위해서. 그런데 최근 색다른 이유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밥’을 먹음으로써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슬로푸드’를 통해 이와 같은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를 실천할 수 있다. 

 음식으로 지역과 청소년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스스로의 길을 선택한 청년들
슬로푸드로 미래를 준비한다


  2년 전,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한 프로그램이 ‘착한식당’을 선정하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 프로그램에서 선정하는 ‘착한식당’이란 좋은 식재료를 정직하게 사용하고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식당들을 말했다.

  하지만 최근 또 다른 개념의 착한식당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기존의 착한식당이 착한 음식만을 고민했다면, 최근엔 그 고민의 범위가 사회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 카페 ‘통’의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은 먹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지역사회를 활기차게 만드는 식당
  과천에 위치한 협동조합마을카페 ‘통’은 건강한 먹거리를 카페 운영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 재료를 받아오는 곳부터 일반적인 식당과는 남다르다. 카페 통은 세 곳의 협동조합에서 재료를 받아오는데 이 재료들은 역시나 유기농 농산물이다. 유기농 재료들을 사용하면 비용 부담이 큰 편이지만 손님들에게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카페의 운영철학이 유기농을 고집하게 만든다. 건강하고 바른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 만큼 그 맛 역시 정직하다. 짜고, 맵고, 단것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처음에 음식을 맛보면 싱겁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맛을 보면 그 정직한 맛에 중독된다.

  재료에 대한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페 통은 과천 지역 내의 주민들이 만드는 식재료들을 사용해서 보다 신선하다. 이는 지역의 경제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방안이 되기도 한다. 또한 커피와 홍차의 경우에는 공정무역을 통해 들어온 것만 취급한다.

  재료만 착하다고 착한식당이 아니다. 카페 통의 목표는 이윤창출이 아닌 청소년들의 대안 교육을 위한 공간 마련이다. 카페 ‘통’의 이주희 이사장은 “청소년들은 평소에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접하기도 하고 편하게 공부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며 “우리 카페에서만큼은 건강한 음식도 먹고 편하게 공부도 할 수 있게끔 하려는 취지에서 카페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시험기간이 되면 중·고등학생 여러 명이 몰려와 커피를 하나만 시키고 오랜 시간동안 공부할 만큼 손님들에게 가게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카페 곳곳에는 청소년과 지역사회를 위하는 카페의 마음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가게를 내기 힘든 수공업자들을 위해 한 달에 오천 원을 받고 카페 한쪽 벽면에 판매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군포시의 ‘인생나자작업장’의 청소년들이 만드는 공예품의 경우에는 어떠한 대가도 없이 판매대행을 해주고 있다. 부엌에선 과천에서 나고 자란 풋풋한 스무 살 청년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이 청년은 카페 통을 통해 바리스타로서 경험을 쌓으며 더 넓은 미래를 향해 도약 중이다.

  카페 통은 400여 명의 조합원들이 함께 설립한 카페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인 식당이나 음식점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카페 안에서 열리는 인문학 강의가 그것이다. ‘사람책’이라는 인문학 강의는 조합원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자리다. 또한 카페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카페의 게시판에 동아리를 만들고 싶다는 글을 게시하면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동아리를 만들기도 한다. 카페 통을 통해 새롭게 3개의 동아리가 만들어져 서로 모르던 조합원들끼리 새로운 유대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을 뿐인데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 ‘슬로비’는 ‘슬로비는 느리게 당신은 건강하게’라는 가게 운영 철학을 내걸고 있다.

사회를 선순환 시키는 ‘얼굴 아는 거래’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홍대입구역에는 항상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불금에는 화려한 복장의 클러버들과 인디밴드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분주하고 활기찬 이 동네에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의 식당이 하나 있다. 올해로 1,000번 넘게 도시인의 끼니를 챙겨온 카페 ’슬로비’가 바로 그곳이다.

  슬로비는 기존에 사람들이 알고 있던 유기농이나 친환경의 개념을 넘어 ‘얼굴 아는 거래’를 추구하고 있다. 얼굴 아는 거래란 직거래를 통해 생산자와 외식업자가 적극적이고 지속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충주의 흙내음 나는 밭에서 올라온 제철채소, 가마솥에서 끓인 콩으로 만든 두부, 암탉과 수탉이 같이 뛰노는 농장에서 올라온 유정란 등이 한 데 모여 만드는 음식은 손님으로 하여금 음식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만든다. 슬로비 강은경 팀장은 “인터넷으로도 재료들을 살 수 있지만 얼굴 아는 거래를 통해 소비자에게 좀 더 신뢰를 줄 수 있다”며 “소비자와 외식업자가 ‘공동생산자’로서 서로 원하는 것을 맞춰주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얼굴 아는 거래의 목표다”고 말했다.

  홍대에서 시작한 슬로비는 현재 제주도와 성북구에 분점을 내면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 아는 거래를 통해 만들어진 슬로푸드를 선보이고 있다. 각 지점들은 지역적 특성에 맞춰 다른 메뉴와 운영방식을 채택해 식당이 아닌 사회전체를 도울 방안을 찾는다.

  홍대본점은 집밥이 그리운 1인 도시 생활자를 위해 고향에 있는 엄마가 만들어 준 것 같은 따뜻한 한식 가정식을 제공한다. 성북지점에는 진학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 젊은이가 도시락 전문 식당을 꾸려간다. 제주지점은 지역의 원주민과 지역자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산물을 이용해 색다른 음식을 제공한다. 손님들은 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슬로비는 ‘영쉐프(Young Chef)’를 육성해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청소년 요리대안학교인 ‘영쉐프스쿨’에는 공교육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요리라는 길을 선택한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는다. 2년간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은 슬로비가 만들어가고 있는 다양한 외식업 분야에 진출한다. 이런 노력들이 이 청소년들이 커서 청년이 됐을 때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 현대인들은 ‘밥’을 그저 끼니만 때우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는 행위가 그저 끼니를 때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시작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