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대학 학칙 개정에

학생 참여 보장 안돼

학생 참여 명문화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 발의 상태

“학생이 없는 대학본부의 밀실행정을 규탄한다.”
 
  지난 1월 고려대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가 대학본부의 일방적 학칙 개정 절차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2월엔 전남대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본부의 독단 행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개최되기도 했다. 학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들과 충분히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문제는 비단 중앙대만의 일이 아니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학본부는 임의로 학칙 개정 절차를 정할 수 있다. 고등교육법 제6조 1항에 ‘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에서 학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시행령에도 ‘학칙을 제정 또는 개정하고자 하는 때에는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정안 또는 개정안의 사전공고·심의 및 공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정도만 기재돼 있을 뿐, 학칙 개정 절차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진 않다. 학생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도 부재한 터라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칙 개정 시 학생들이 배제되고 있다.
 
 
중앙대 학칙에 따르면 학칙을 개정하기 위해선 세 개의 회의기구를 거쳐야 한다. 심의 기구인 대학평의원회와 교무위원회를 거쳐 의결기구인 이사회의 승인을 얻으면 학칙이 개정된다. 
 
  학칙 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은 각 부서장의 몫이다. 학생들에겐 발의권이 없다. 이에 기획처 김정탁 계장은 “각 단과대 행정실이나 학생처를 통해 학칙 개정을 건의할 수 있다”며 “이것도 일종의 발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 학생들이 학칙 개정안을 건의하는 것은 학생총회나 서명운동 등의 집단행동을 통해서나 가능했다. 또한 학생들의 건의로 학칙이 바뀐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서울캠 학생총회에서 단위 요구안이 의결돼 본부에 전달됐지만 행정에 반영되진 않았다.
 
  학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는 대학평의원회뿐이다. 15명의 평의원 중 학생 평의원은 3명으로 현재 서울캠, 안성캠, 대학원 총학생회장이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평의원회는 의결권이 없어 학칙 개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단지 심의기구 역할만 수행할 뿐이다. 사실상 학칙 개정에 대한 권한은 의결권을 가진 이사회에 집중돼 있다. 안성캠 지수양 총학생회장(무역학과 4)은 “대학평의원회 심의안이 이사회에 올라간다하더라도 어떤 변화를 줄지 의구심이 든다”며 “현재 위상으로는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인문사회계열 4개 전공 폐지를 골자로 한 학칙 개정안이 상정됐을 땐 대학평의원회 심의 이전에 이사회 승인이 떨어지기도 했다. 학칙상 절차는 대학평의원회 심의를 거친 후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당시 관련 주체들은 천막 농성과 같은 활동을 펼치며 학칙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표하곤 했다. 대학평의원회는 여론 수렴이 충분히 되지 않은 상황이라 판단해 대학본부가 심의를 요청한 날에 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 심의 가능 기한이 약 40일 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추후에 심의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본부는 이를 ‘심의거부’라 보고 예정대로 이사회를 진행해 개정안을 승인했다. 이사회 승인 한 달 뒤 대학평의원회가 개정안을 심의했다. 대학평의원회의 의견이 이사회의 결정에 고려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은 “법원에서 대학평의원회의 심의권 한계를 좁게 결정하여 대학본부가 대학평의원회의 심의 결과와 관계없이 학칙을 개정하기도 한다”며 “대학운영의 민주성·투명성·합리성 제고라는 당초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 학생들의 경우 학칙 개정안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진다. 학칙 제94조 2항에 따르면 총장은 학칙 개정안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현재 학칙 개정안을 알리는 창구로는 중앙대 포탈이 유일하다. 학칙 개정 공고 메뉴에 직접 들어가봐야만 학칙 개정 내용을 볼 수 있어 이를 수시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학칙 개정 사실을 알긴 힘들다. 서울캠 강동한 총학생회장(물리학과 4)은 “포탈에 공지하는 것만으로 학칙 개정 내용을 널리 알리기엔 역부족이다”며 “특히 이번 개정안은 학생자치활동에 관련된 내용이니 공식 홈페이지나 중앙인 커뮤니티에 개정안을 게재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칙 개정 과정에 학생들이 직접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김정탁 계장은 “학칙에 20일 이상 공고하라고 명시해 놓은 기간이 의견 수렴 기간”이라며 “의견 제출은 학생처나 단과대 행정실을 통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앙대 포탈 게시글에는 기획처 명의로 학칙 개정 내용만 적어 놓았을 뿐 의견 제출 방법에 대한 언급은 없다. 타대 중엔 학칙 개정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는 곳도 있었다. 한국외대, 국민대 등은 학칙 개정안을 공고하며 주무부서의 연락처와 메일 주소를 밝혀 의견을 듣고 있다. 
 
  결국 학칙 개정 과정의 실질적인 권한은 이사회에 있는 셈이다. 최종적으로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학칙 개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사회에는 이용구 총장과 박용성 이사장을 비롯해 이태희 상임이사,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등이 속해 있다. 2010년 서울캠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는 “사립학교법에 의거 학칙개정에 대한 최종 권한은 총장에게 있으며, 이사회의 최종 승인은 월권적 행사”라며 학칙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최종 승인권은 이사회가 갖고 있다.
 
  학칙 개정 절차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지난해 말 배재정 의원 외 21인, 유은혜 의원 외 22인이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다. 각 개정 법률안에는 ‘학생의 대표는 학칙의 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다’, ‘학교의 장은 대학자치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하여서는 아니 된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학내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학생이 학칙 개정 절차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으면 과거 군사정권 때 만들어진 비민주적, 반인권적 학칙을 대학본부가 느닷없이 살려 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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