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은 아니고, 그냥 관찰기이므로, 성격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청탁을 받아들였다. 정말이지 요즘처럼 대학이 미쳤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대학이 미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대학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미쳤다’는 말은 필자가 생각하던 대학의 모습과 현실 속의 대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뜻이다. 남의 나라이야기니까, 놀라지는 말라.
 
  최근에 미국의 대학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도서관을 가득 채운 학생들은 종이 울리자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방학 중임에도, 도서관 문을 닫는 새벽 3시까지 빈 좌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로 의과대학원이나 법학대학원을 가기 위해, 혹은 그냥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지키는 학생들이었다. 축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아리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말 그대로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는 것 같았다. 휴학과 복학이 비교적 자유로운 우리와 달리, 일단 휴학을 하고 나면, 성적에 따라 복학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대학입시 설명회에는 잘나가는 동문들의 소개, 노벨수상자가 몇 명이라는 자랑, 세계적 수준의 교수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자랑이 빠지지 않는다. 세계적 수준 어쩌고 할 때마다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머쓱하게도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많은 대학들이 홍보물의 앞 페이지를 그런 유치한 자랑거리들로 채우고 있다. 취업률 자랑도 단골 메뉴이다. 어떤 대학의 입시 설명회에는 자기네 학생이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인턴을 갔다는 에피소드까지도 깨알같이 자랑하고 있었다. 한 대학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운영하고 있는 해외 캠퍼스에서 공부할 수 있는 특전이 있다고 유혹한다. 탄탄한 동문들의 도움으로 취직이 용이하다는 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아니라 마치 취업박람회같다. 예비 학생들은 학교가 인턴십을 알선해주는지, 졸업 후 어떤 분야로 진출하는지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전에도 그랬는데 내가 미처 몰랐거나, 최근에 상황이 바뀌었거나, 아무튼 참 놀라웠다. 학교 설명회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추상적 단어들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인턴, 취업, 진로, 동문, 세계적 수준, 따위의 단어들만 난무한다. 아이비리그라 불리는 명문대에서 말이다. 진리를 탐구하고, 공공의 정의를 모색하고, 개인의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장소로서의 대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대학은 투자가치가 있는 거래처로 보일 뿐이다.
 
  이런 모습이 비단 미국만의 현상일까. 아닐 것이다. 여유롭게, 추상적 세계에 경도된 대학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안타깝고 애처로울 뿐이다. 물론 30여 년 전의 대학 모습이 지금도 유지되기를 기대하거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대학은 지금의 사회구조에서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슴 답답해하는 것은, 과연 대학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자신이 새로 깨닫기 전에 어떤 충고를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장영준 교수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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