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프로야구와 미국 메이저리그가 연이어 개막했다.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나 또한 약 10년 전부터 야구를 즐겨 보고 있다. 경기 간간이 느껴지는 여백의 미 때문에 야구가 좋다. 야구는 최소 16번 이상 공수를 교대하면서 경기가 자주 쉬기 때문에 틈틈이 숨을 돌리며 딴 생각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덕분에 요 며칠 전에는 야구를 보다가 ‘야구에 행복한 삶의 원리가 녹아 있는 것 같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구 전문가도 인생 전문가도 아니지만, 야구에서 발견한 소박한 삶의 아이디어를 짤막하게나마 적어 보려 한다.
 
  야구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가장 중요할까? 무엇보다도 경기가 시작하기 위해서는 공을 던질 사람, 즉 투수가 꼭 필요하다. 타자가 준비되고 야수들이 곳곳에 배치되더라도 투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멈춰 있는 공을, 경기를 움직이는 힘은 투수에게서 나온다. 타자를 포함한 나머지 선수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결국엔 투수가 던진 공에 반응할 따름인 것이다.
 
  하지만 투수가 자기 멋대로 공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투수에게는 공을 던질 상대 또한 꼭 필요하다. 흔히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진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투수는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공을 던진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 뒤에는 글러브를 열고 투수의 공을 기다리는 포수가 있다. 투수는 자신의 공을 받아주는 사람을 향해 공을 던진다. 투수는 자신이 어떤 공을 어느 코스로 던질 것인지를 포수와 은밀히 논의한다. 경기장에서 투수와 포수는 마치 한 몸처럼 교감하고 호흡한다.
 
  그렇다면 포수가 없는 투수는? 그런 투수는 경기가 아닌 훈련에서 등장한다. 그것도 투수가 아닌 타자가 훈련할 때. 타자를 위한 훈련의 보조자가 되는 것이다. 타격 훈련에서 투수의 역할은 ‘타자와 맞서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것’이 아니고, 그저 타격 훈련하기 좋은 적당한 공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던지고, 받아치고, 또 던지고 받아치고. ‘타자의 배트에 보기좋게 맞아나가기 위한’ 공을 반복해서 던져주는 일에 재미가 느껴질 리가 없다.
 
  우리의 삶을 야구 경기에 비유해 보자. 우리 모두는 한 명의 투수다. 투수가 공을 던짐으로써 경기가 시작되듯, 우리는 행동함으로써 삶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행동의 목적이 ‘그 행동으로 인한 결과’만을 위한 것이 된다면, 타격훈련을 위해 배팅볼을 던져주는 것 같은 보조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너무 위력적인 공을 던지면 칭찬은커녕 ‘타격훈련에 부적합한’ 존재가 되어 버릴 것 아닌가. 타자가 치기 좋은 코스로 적당한 공을 던져주는 일에는 어떤 개성도 색깔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내 행동이 남을 위한 ‘보조적 존재’가 되는 순간, 내 인생의 순간순간이 하나도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삶의 목적은 투구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나의 행위는 그에 대한 반응을 위해 ‘맞춰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빼어나고 훌륭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재미가 있다. ‘타자를 위한 삶’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내 공을 받아 줄 포수가 필요하다. 나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내 행동에 공감해 줄 좋은 벗이 꼭 필요한 것이다.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표현들을 인정해 주고 긍정할 벗이 있다면, 설령 내가 던진 공이 보기좋게 맞아나가더라도 의연히 다음 공을 던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의 목적과 행동을 지지해 줄 포수를 앞에 두고 내 공을 던지는 순간 그 공은 타격훈련을 위한 것이 아닌 내 경기를 위한 것이 된다. 삶이라는 마운드에 서서, 나를 이해하는 벗을 향해 힘차게 공을 던지는 것,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원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대현 학생
심리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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