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걸음마를 뗀 친조카의 작디작은 입에선 ‘엄마’라는 단어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자신도 자기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신기한지 몇 번이나 입술을 부르르 떨어본다. 윗입술과 아랫입술 그 사이에서 쏟아진 말들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아이의 성장 과정이 마냥 신기한 엄마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고운 말들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연거푸 반복한 고운 말보다 평상시에 들어왔던 익숙한 말을 내뱉는다. “빨리-빨리.”, “아니-아니.” 아이의 발음이 서툴러 잘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엄마는 놀람을 감추지 못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던 엄마의 행동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자도 편집장이란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새삼스러운 일을 많이 겪는다.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나날들이다.  
 
 2009년 중대신문은 권위적인 대판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은 신문으로 발돋움하고자 베를리너판형을 선택했다. 현재 중대신문은 기획기사와 심층 보도를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매주 30여 개가 넘는 사건·사고를 다루다 보면 최소 100여 명의 취재원과 만난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설렘도 없이 일하다 보니 기자들은 제풀에 지치지만 아마추어란 딱지를 떼기 위해 또다시 도전한다. 이때 기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어떻게든 신문은 나온다!” 
 
 요즘 전반적으로 기자들과 취재원들 사이에 권태기가 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듣고 싶은 것만, 말하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것만 주장하다 보니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 그러던 와중에 기자는 최근 한 취재원으로부터 한 소리 크게 들었다. “왜 비판을 하지 않고 비난을 하는 거죠?”라고 말이다. 순간 명치를 세게 얻어맞은 듯 가슴이 죄여왔다. 알 권리라고 주장하며 파헤쳤던 행동들이 당사자에겐 상처로 다가온다는 것. 잘해보자고 해본 일이 되레 골칫덩이로 전락해버린 과정을 겪으며 다시금 기자란 무엇인지 생각에 빠졌다.
 
 지긋이 나이를 먹은 노년의 취재원은 그런 내게 진실만 바라보란다. 진실은, 진실로, 진정 어디에 있는지……. 덧붙여 노년의 취재원은 내게 에디슨의 명언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에디슨의 명언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다’란 말에 대해서다. 당시 에디슨을 취재하던 기자는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오역해 ‘노력만이 최고다’란 의미를 살려 기사화했다. 진실은 바로 99%의 노력에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천재성을 갖기 힘들다는 의미였는데도 말이다. 기자의 두 눈과 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중대신문 상반기 일정이 반쯤 마무리됐다. 거리를 두고 되돌아보니 그동안 많은 사안을 놓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지는 않았을까 싶다. 형체는 있지만 심장을 잃은 듯……. 혹여나 독자들에게 반쪽자리 신문으로는 비치지는 않을까 고민이 거듭된다. 이젠 정말 99%의 노력이 빛을 보기 위해 독자들이 주는 1%의 소중한 관심이 절실할 때다.     
 
최아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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