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옥인상영관의 상영실에서는 '콧수염 필름즈'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사진 김영화 기자

독립영화, 동네로 스며들다
빈집에 싹튼 예술적 감성

관객과 감독이 한자리에
영화를 통해 소통하다

  “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면 무엇이든 소재로 이용할 뿐이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은 ‘팩토리’라 불리는 작업실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얻었다. 그의 팩토리는 언제나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화가, 시인, 가수 등의 예술가부터 성전환자, 마약중독자까지. 앤디워홀에게 그들은 자신의 관중이자 새로움을 환기하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한마디로 앤디워홀의 팩토리는 팝아트의 기상천외한 상상이 흩날리는 예술공방이었다.
 

  종로구 옥인동의 골목길이 굽이굽이 닿은 곳에 앤디워홀의 팩토리를 꿈꾸는 곳이 있다. 녹빛 잔디와 나무가 어우러진 앞뜰 위에 지어진 2층 주택이 그곳이다. 일반 가정집으로 보이는 외관은 팩토리와는 사뭇 멀어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독립영화관이다. 매표소도 팝콘도 없는 이곳은 그 어느 극장보다 예술적인 감성이 흐른다. 
 

  독립영화를 위한 공간
  뜰을 지나 입구로 들어가면 바깥에서 본 가정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3월의 볕이 들어오는 곳에 거실 대신 탁자 몇 개가 놓인 라운지가 있다. 아늑함이 느껴지는 이곳은 영화마니아들에겐 둘도 없이 흥미로운 장소다. 상영 중인 독립영화를 미리 엿볼 수 있는 게시판, 상영됐던 작품들의 흔적, 책과 예술작품 그리고 수백 개의 비디오가 한집 안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친구사이인 다섯 명의 청년들의 손에서 시작됐다. 원래 이 집은 멤버 중 한 사람인 김도균씨가 살던 곳이었다. 하지만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이사를 가게 되자 한동안 빈집으로 남아있던 공간에 이들이 활력을 불어넣었다. 설립 멤버 중 한 명인 김진호씨는 개관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공간이 아까워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친구 부모님께 허락을 구했어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의견이 모였죠.”


  영화와는 조금도 관련 없는 청년들이 독립영화관을 차리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들 주변의 영화감독, 예술가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멀티플렉스가 영화계 시장을 독식하면서 독립영화관들이 밀려남에 따라 나타난 결과였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것들을 틀 공간이 없어요. 상업영화 외에 다양한 영화를 공급하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영화산업에 대한 막중한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스크린을 제공해주자는 것. 돈을 벌어 수익을 내겠다는 욕심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꿈이 있는 감독은 한 명이 보든 여러 명이 보든 본인의 영화가 어디에선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니까요.”

▲ 거실을 개조한 라운지에서 감독과 관객이 대화를 나눈다. 사진 김경림 기자

  오늘을 보여주는 영화들
  ‘지금 상영중’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쓰인 팻말에는 주말마다 불빛이 켜진다. 다섯 청년들이 번갈아 상영관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관람료 오천 원이면 영화 한 편과 음료를 제공받는다. 상영실의 문을 열면 붙박이장을 개조해서 만든 영사기와 스크린 그리고 몇 개의 의자가 놓인 소규모 극장이 나타난다. 행여 소음이 새나갈까 싶어 두른 방음지까지 극장의 구색을 갖추었다. 


  지난해 3월 개관 이후 수십 편의 독립영화가 옥인상영관의 스크린을 비췄다. 학생들이 만든 독립영화부터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 국제 단편영화제’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곳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직접 감독에게 연락해 허가를 받거나 공모를 통해 출품을 받은 작품들이다. “상영에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저희 다섯 명이 봤을 때 볼만하다 싶은 영화를 틀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상영했던 작품들은 내용부터 영상미까지 퀄리티가 상당한 편이죠.” 이곳에서 관객은 상업영화가 말하지 않는 삶의 단편들을 마주한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이다.


  현재 옥인상영관에서는 다음달까지 ‘콧수염 필름즈’ 영화제가 진행된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제작된 이상덕 감독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청춘, 운명적 낭만론’이다. 60분간 이어지는 4편의 작품을 통해 이상덕 감독은 청춘의 오늘을 풀어나간다.


  단순한 청춘예찬 이야기는 아니다. 이상덕 감독은 청춘의 운명적 낭만론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청춘이라는 우리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낭만이라는 단어가 겉에서 보면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 되게 무책임할 때가 많죠.” 젊다고 해서 항상 열정적일 수만은 없다. 운명이라 믿었던 것에 배신을 당하고 현실에 부딪치는 게 더 당연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팩토리, 라운지
  영화가 끝나면 대기실이었던 라운지는 비로소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의 감상을 더욱 값지게 해줄 감독과의 대화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4월까지 매주 토요일엔 이상덕 감독이 상주하며 관객과 대화를 이어갈 예정이다. 큰 규모의 영화제에서 흔히 보는 감독과의 대화와는 차이가 있다. 볕이 드는 창가의 테이블은 마이크보다 맥주 한 잔이 더 어울린다. 친근한 분위기에서 영화감독과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큰 의미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진호씨와 그의 친구들이 상영관에 라운지를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 “공간을 최대한 많이 이용하고 싶었어요. 관객과 감독이 한자리에 앉아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하면 훨씬 더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잖아요.”


  관객의 반응을 눈앞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감독에게도 큰 의미다. 또한 관객의 피드백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이상덕 감독 역시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관객들의 생각을 들으며 저도 많은 걸 느껴요. 제가 봤을 때 옥인상영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끝낸 것 같아요. 이제 영화감독의 좋은 작품과 관객의 역할이 중요하겠죠.”


  옥인상영관에서 영화감상은 단순히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영화의 제2막이 열리는 것이다. ‘훌륭한 소통은 블랙커피처럼 자극적이며 후에 잠들기가 어렵다’고 미국의 한 작가는 말했다. 친구 집에 온 듯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소통은 더 자유로워진다. 결국 영화와 예술,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는 이곳에서 예술적 시상이 봉오리를 맺는다. 이곳을 찾은 누군가에게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수도 있다.

 

■옥인상영관 관람정보
- 상영 및 개관시간 : 토, 일요일 정오 12 ~20시까지
- 입장료 : 5,000원
  (음료 하나 선택가능 - 음료는 수시로 변동됨)

- 교통정보
  쪾버스 : 지선 1020, 1711, 7016, 7018, 7022, 7212
  쪾지하철 :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도보 16분)
  쪾마을버스 : 3호선 경복궁역 종로09번
     (통인시장 후문 하차 후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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