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저리 치이는 현대인들에게 소비는 괴로운 현실을 잊게끔 하는 축제다. 일상의 괴로움을 해소하고자 주말이면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등지로 흩어져 정신없이 쇼핑을 즐긴다. 그리곤 다음 축제를 위해 다시 괴로운 일상을 견뎌나간다. 더 이상 필요에 의한 소비를 찾을 수 없다. 불안한 일상을 견뎌나가는 현대인들에게 소비행위는 그 자체로 목적이며 결말이다.
 

  필요와 합리가 밀려나간 자리엔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거대한 욕망이 들어 앉았다. 한껏 부풀어오른 욕망은 도시 곳곳에서 그 존재를 과시한다. 류신 교수(유럽문화학부)는 저서 좬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좭(민음사 펴냄)를 빌어 현대인의 소비욕망을 가장 적나라하고 예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도시에 담긴 자본주의적 욕망을 탐색한다.
 

  화자 ‘구보’는 80년 전 경성 시내를 무기력하게 걷던 박태준의 ‘구보’와 유사한 인물이다. 다만 경성의 구보가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고 그 풍경을 묘사하는데 몰두한 데 비해 21세기 구보의 관심사는 서울이라는 공간에 함유된 속성과 사유이미지다.
 

  ‘도시 관상학자’로 명명된 구보는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시작으로 서울 곳곳을 산책한다. 초기 자본주의의 원형과 물신주의적 속성을 포착하고자 했던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지금 여기’ 서울에서 새롭게 시도해보기 위함이다. 구보는 서울의 곳곳을 누비며 현대인들의 소비와 욕망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도시라는 공간에 어떻게 포섭되어 가는지 관찰한다. 서울에서 자본주의적 질서는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커피숍, 네일아트숍 등 다양한 ‘공간’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 속에서 현대인은 “불가능은 없다고 훈육하는 자본주의 무한 경쟁 사회에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당위에 포섭”(180쪽)되고 만다.
 

  늦은 저녁, 구보의 발걸음은 집 앞 가로등에서 잠시 멈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보이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재생산속에서 가로등 불빛은 실낱같은 희망이 있음을 알려온다. 그가 발견한 서울의 아케이드는 우리의 감정이 역동적으로 교류하는 용광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무늬가 매일 새롭게 그려지는 현장’에서 구보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아케이드의 모습을 발견했다.
 

  경성 시내를 하릴없이 누비던 예전의 구보가 미래에 대한 의지를 다잡았던 것처럼 21세기 서울의 구보도 산책 끝에 그간의 무기력에서 벗어나 미래를 그리게 된다. 단 하루의 일이 아니라, 어쩌면 구보가 살아온 37년일지도 모를 긴 산책은 벤야민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무리된다.
 

  “저는 서울의 아케이드를 걸으며 길바닥에 음각된 ‘나’라는 말의 희미한 윤곽을 보았습니다. 저는 소망합니다. 제가 목도한 ‘나’라는 말이 당신이라는 ‘나’의 온몸으로 스며든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되울리기를. 그럼으로써 서울 거리에 새겨진 서로 다른 수많은 ‘나’들이 공명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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