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들이 빼곡히 차 있는 흑석동 전경. 사진 박가현 기자


대학생과 지역 사이에
흑석동의 모든 것이 있다

마을을 기록하는 사람들
흑석의 문화를 모으다

  흑석동. 이름에서부터 오래된 기운이 느껴지는 곳. 골목길 사이로 수십 년은 돼 보이는 낡은 건물들이 빽빽하다. 중앙대가 떡하니 버티고 있지만 대학가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해 뭇 신입생들의 로망을 몇 번이고 꺾었을 법하다. 하지만 흑석동의 여기저기서 숨은 매력을 찾는 이들이 있다. 골목사이 숨겨진 맛집, 오래된 목욕탕, 30년 넘은 카페, 시장의 목소리들. 다른 대학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오직 흑석동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그들, 지금 이 순간의 흑석동과 함께하고 있었다.

 SNS 페이지 ‘흑모것’은 ‘좋아요’ 7,000개를 넘긴 인기 커뮤니티다. 2012년 2학기부터 흑석동의 기록을 담았다. 처음엔 중앙대 학생들을 위해 흑석동의 맛집을 소개하는 정도였지만 이젠 주민이 직접 붕어빵 파는 데가 있나요? 하고 질문하기도 한다. 타임라인 위로 댓글이 오가며 주민들의 관심도 어느덧 늘어간다. 청룡연못의 거북이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모습에서 흑석동을 향한 흑모것의 애정이 느껴진다. 흑모것은 SNS페이지를 넘어 오프라인까지 넘나들면서 마을공동체로 거듭났다.
 

  마을공동체의 시작이 된 모임은 대화를 가볍게 이어나가는 ‘수다회’였다. 성년의 날을 맞이한  파티에서 처음 만났지만 그들 사이에는 스스럼 없는 대화가 오갔다. 파티가 무르익었을 무렵, 자리에 있던 사람 중 플리마켓에 관심을 가진 흑석커 한 명이 나섰고, 22명의 흑석커들은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중앙대 정문 근처의 데얼즈 팩토리에서 벼룩시장이 열린 것이다. 나에겐 있으나 마나한 물건이 모이고 모여 시장이 되는 기회였다. 수익금의 일부를 흑석동 길고양이의 캣맘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마음도 잊지 않았다. 
 

  2개월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친 대형 프로젝트도 있었다. 바로 지난해 10월에 열린 ‘차곡차곡’ 이다. 청년들의 사업을 지원하는 ‘청년허브’의 도움으로 전시회와 영화제를 위한 공간이 흑석동 주민센터에 만들어졌다. 주민센터의 지하주차장에서 연 것이 오히려 중앙대 학생들은 물론 지나가던 흑석동의 주민들의 호기심까지 불러 모았다. 지역 커뮤니티인 동작FM의 방송에 ‘차곡차곡’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흑석동 구석구석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은 흑석동에 거주하는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담았다.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영화 <도시, 예술가, 리노베이션>은 도시의 재개발을 다루고 있어 여기저기서 허물어지고 있는 흑석동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흑모것은 흑석동에도 ‘문화’가 있다고 믿는다. 단지 홍대나 서울의 번화가처럼 드러나 있지 않을 뿐이다. 그렇게 예술가들과 숨어 있는 멋진 공간을 수면 위로 끌어내는 역할을 흑모것이 해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물론 마을 주민들까지 자연히 흑석동과 하나됨을 느꼈다.
 

  이들의 앞으로의 행보는 어떨까.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방식은 이들에게 맞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들이 뭔지 함께 얘기해 보고 그것을 차근차근 일궈 나가는 편이다. 흑모것 운영자 차승학 학생(사회학과 4)은 7년 째 학교를 다니며 흑석동에 품은 애정을 사람들에게 전파한 장본인이다. “사실 1년 전부터 흑모것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고민을 했어요. 하던 것을 중도 포기하긴 싫었거든요. 어떻게든 흑모것이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는 최근에 ‘흑모것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기획의 컨셉을 잡기 위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흑석커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주민들의 셀카를 찍자고요? 하하.” “사람의 전체 모습을 찍는 것보다 일부를 찍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성향이 드러나도록.”
 

가벼운 마음으로 알찬 대화를 이어나가는 이들은 시즌2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 흑석동 주민들의 생활의 불편을 덜기 위한 무단횡단을 방지하는 포스터를 만들거나, 흑모것의 컨텐츠를 좀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웹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주민들의 자화상을 담는 활동으로 흑석동을 표현하는 방법도 구상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지역 커뮤니티와 마을 주민들, 중앙대 학생들의 끊임없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 한 구석을 ‘마을’로 느끼게 해 주는 그들의 활동이 기대된다. 
김경림 기자 kl0_0a@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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