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만난 도시 청년들, 함께 사는 법을 배우다
  • 김영화 기자
  • 승인 2014.03.1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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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
▲ 은평 독거청년 네트워크가 밥솥모임을 가진 후 멤버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 독거청년 네트워크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 마을은 정의에서부터 젊은이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마을이나 동네와 같은 장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다시 마을을 통해 뭉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그저 함께 살자는 것. 바로 젊은 활력이 돋아나는 마을공동체다. 

 

  밥부터 주거까지
  독거청년, 마을을 만나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알바 하랴 취업준비 하랴 대학생들의 삶이 한 치 여유도 없이 바쁘다. 그들에게 옛날의 속담은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뭉치는 것보다 차라리 흩어져 제 할 일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뭉침’의 가치를 아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입 모아 말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무엇을 하든 혼자 있지 말고 함께 하자는 것. 그래서 좀 더 즐기자는 것. 자신들의 터를 사랑해 뭉친 이들, 청년들의 마을공동체를 찾았다.

  공동체에서 답을 찾는 서울시립대 동네활력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냉동기 보수 작업을 하던 한 청년이 냉동기 속에서 차디찬 죽음을 맞았다. 복학 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그의 마지막이 된 것이다. 당시 장례식장을 찾았던 ‘동네활력소’ 코디네이터 류한우 학생(서울시립대 행정학과 4)은 당시를 회상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생계 문제에 매달리다 보니 주위에 친구가 없었어요. 장례식장이 쓸쓸해 마음이 많이 안 좋았죠.”

  그 후 류한우 학생은 대학생들이 혼자 사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증가하는 1인 가구와 파편화된 대학생들의 삶에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대학생들은 피상적인 관계에 놓이기 쉬워요. 혼자 사는 대학생들의 문제를 지역에서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36개입 휴지 한 묶음이 고민되는 1인 가구 학생들, 따뜻한 집밥이 그리운 자취생들, 비싼 월세가 부담스러운 학생들에게 마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중심으로 참여하는 동네활력소는 대학생과 마을을 잇는 마을공동체 역할을 한다. 류한우 학생은 맨 먼저 늘어나는 1인 가구를 위한 공동구매, 공동주방과 같은 공동주거에 대해 고민했다. 마을공동체 전문가를 섭외해 특강을 진행한 ‘청년 마을 아카데미’를 기획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를 통해 공동주거의 가능성을 엿본 동네활력소는 앞으로 지역과 연계한 주거 사업도 준비 중이다.

  ‘공동’이라는 키워드를 잡은 동네활력소는 이후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활동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공동 밥상 사업. 혼자 살아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지난 설에는 직접 전을 부치고 과일을 사서 인근 독거노인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용운 학생(서울시립대 컴퓨터공학과 4)에게는 크나큰 경험이었다. “이제껏 몰랐는데 학교 앞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쪽방들이 널려있더라고요.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그래도 어르신들이 많이 좋아해 주셔서 많은 걸 느꼈죠.”

  대학생과 지역 주민, 가깝고도 먼 그 사이에 마을공동체는 그야말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쁜 대학생들에게는 이 지역이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해 애정을 가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 주민들에게도 대학생들은 어쩌면 금방 떠나버릴 뜨내기일 수 있다. 류한우 학생에게 공동체는 무엇일까. “일단 자기가 사는 곳에서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이왕 한 동네서 살면서 같이 밥 먹고 인사하고 또 즐길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죠.” 어느새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동네. 그 골목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따스한 애정이 느껴졌다.

  밥으로 소통하는 은평 독거청년 네트워크
  “오늘은 누구랑 밥 먹지.” 혼자 사는 대학생, 일명 ‘독거청년’들은 식사시간마다 커다란 문제에 직면한다. 혼자 먹는 식탁은 또 언제나처럼 편의점이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채워지기 십상이기 때문. 은평 독거청년 네트워크의 대표인 고진수씨도 한때 독거생활을 오래 해봐서 누구보다 그 고충을 잘 안다. “단순히 밥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혼자 산다는 것은 심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죠. 그것이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소통의 창구가 없어 정서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에요.”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안다고 했던가. 혼자 사는 고충은 혼자 살아본 사람들이 헤아릴 수 있다는 것. 은평 독거청년 네트워크의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독거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연신내의 복합문화공간 ‘틈’으로 은평구 독거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공동체가 되었다.

  독거청년들의 모임은 밥상으로 소통하는 ‘밥솥모임’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모임은 식사로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살 수 있을까. 높은 땅값으로 인한 주거문제부터 심리적인 문제까지 독거청년들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함께 고민한다. 고진수씨는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의외로 공동체를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주거문제나 심리적인 고독감을 공동주거 문화를 통해 극복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죠.” 한 지붕에 함께 살면 비용도 절감되고 심리적인 위안도 된다는 것.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또 한 번 와 닿는 대목이다.

  농사짓는 도시 청년들, 파절이
  청년들의 마을공동체는 팍팍한 도심 속에서 파릇파릇한 ‘텃밭’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방울토마토부터 가지, 고구마 등 각종 채소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경작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노들다리 밑의 노들섬과 마포구 한 건물의 옥상에서는 대규모 텃밭이 자라고 있다. 농사짓는 도시 청년들의 모임, ‘파절이’ 덕분이다.

  처음에는 ‘도시에서 탄소 0% 배출을 목표로 농사를 지어보자’는 단순한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4명의 대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농사는 인근 대학생들과 주민들이 합세해 함께 텃밭을 일구고 재배된 채소들을 인근 카페에 납품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파절이 공동체는 입소문을 타고 점차 그 규모가 커져 현재는 270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 협동조합으로까지 성장했다. 파절이의 공동대표 류소미씨는 “도시에 있다 보니 아파트 주민들처럼 지역주민들이 텃밭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다”며 “늘어난 인원에 조직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협동조합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빽빽한 도심의 공기도 파절이 텃밭에서는 숨통을 틔운다. 채소를 재배하는 모든 과정이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 탄소를 배출하는 비료 대신 동네의 남은 음식물, 옥상텃밭 앞의 목공소에서 얻은 텃밭, 지렁이 분변토로 퇴비를 만든다. 뿐만 아니라 채소들을 인근 카페에 납품을 할 때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자전거로 배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파절이를 보면 공동체의 의미가 농사를 짓는 데서 빛을 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밭을 경작하는 것 자체가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절이의 처음과 끝에는 지역공동체가 함께한다. 옥상텃밭의 채소들은 마포구 독거청년들이 배를 불리고 주변의 카페들을 살리기도 한다. 밭에서부터 식탁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다 같이 경작하고 건강한 밥상을 함께 나누잖아요. 뿐만 아니라 인근의 가게들과 소통하니까 신선한 지역농산물인 로컬푸드를 활성화할 수도 있죠.”

  옛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놀이문화를 함께 발전시켰듯 파절이 공동체도 옥상의 한쪽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긴다. 명사를 초청해 텃밭에 대한 강연을 하는 ‘공중특강’부터 텃밭 파티, 텃밭 클래스까지 놀이 문화도 다양하다. 스크린을 설치해 팝콘 대신 직접 키운 샐러드를 먹으며 영화를 보는 샐러드 영화제는 파절이 식구들에게 단연 인기 있는 활동 중 하나다. 이들에게 마을은 단순히 사는 곳 이상의 의미다. 내가 먹을 음식들이 자라는 곳, 오손도손 먹을 밥상이 차려지는 곳, 그리고 그 밥상을 함께할 이웃들이 사는 곳. 보금자리를 사랑하는 마을공동체가 그 어느 때보다 싱싱하고 젊은 기운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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