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현동 쓰리룸에 온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에서 주인공들은 함께 음식을 먹으며 가까워진다. 식사가 단순히 ‘배를 채운다’는 의미를 넘어 마음을 나누는 범위까지 다가선 것이다. 하지만 개강으로 어딜 가나 북적이는 대학가의 식당에도 혼자 밥을 먹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홀로 외로운 식탁을 차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바로 모르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는 ‘소셜다이닝’이다.

 

달동네에서 함께먹는
보름달처럼 풍성한 만찬

처음보는 얼굴이어서
더욱 편안한 한끼 식사

 

  인디밴드 ‘피터아저씨’의 멤버인 천휘재, 김산, 김초원씨는 저렴한 자취방을 찾다 재개발 예정 지역인 아현동 653-10번지의 세 칸짜리 방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얻게된 집값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간판은 A4용지에 청테이프를 붙여 만들었다. 재개발 지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던 세 사람이 공연이 끝난 뒤 관객, 친구들과 집에 모여 음식을 해먹던 것이 소셜다이닝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SNS와 집밥 커뮤니티를 통해서 사람들을 초대해 가정식을 먹는 모임을 만들어 함께 식사를 했다. 그것이 소셜다이닝 ‘아현동 쓰리룸 - 목요일엔식당’이 되었다.

  매주 목요일이면 아현동 쓰리룸은 따뜻한 밥상에서의 대화가 그리운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난 6일 저녁 아현동 쓰리룸의 소셜다이닝은 ‘마음얘기’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모인 13명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후 7시 30분, 25살 여대생부터 간호사, 취업준비생, 직장인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쓰리룸의 작은 거실에 둘러앉았다. 이날 저녁 메뉴는 아현동 쓰리룸의 셰프 천휘재씨의 야심작 ‘어머니의 된장국’. 동네 시장에서 사온 두부와 시골된장, 신선한 애호박이 어우러진 따뜻한 된장국 한 그릇이 식탁에 놓여졌다.

  식탁 주변을 감돌던 어색한 기류가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 풀어지기 시작했다.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와 정말 맛있어보여요. 이 두부는 어디서 사오셨어요?” 천휘재씨는 이날 모인 사람들에게 아쉬운 듯이 말했다. “물을 너무 많이 넣었나봐요. 어머니의 된장국보다 맛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많이 드세요!” 이날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된장국뿐만이 아니었다. 뒤늦게 등장한 아현동 쓰리룸의 단골손님인 전석병씨의 애완견 ‘티니’의 계란 노른자를 향한 애교는 사람들의 긴장을 모두 녹게 만들었다.

  후식으로 나온 따끈한 구운 계란을 들고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오셨어요?” 밥상을 사이에 두고 소소한 대화가 오갔다. 직장인 홍인선씨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아현동 쓰리룸을 찾았다.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위안을 얻기 위해 왔어요.” 그녀는 그날도 역시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냈는지 직장생활의 무료함을 연신 털어놓았다. 간호사 엄지현씨는 피터아저씨처럼 집에서 소셜다이닝을 열고 있는 ‘집밥지기’다. 아현동 쓰리룸의 집밥지기 천휘재씨의 초대를 받은 그녀는 소셜다이닝에 대해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구수한 된장국과 함께한 맛있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아현동 쓰리룸의 운영진 조슬기씨의 마음얘기가 시작됐다. 조슬기씨는 “요즘 느낀 우울했던 감정을 사람들에게 터놓고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며 “이해받음으로서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고 마음얘기의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향긋한 유자차 한잔과 함께 다양한 감정과 사연을 가지고 앉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친한 친구의 앞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답답함, 엄마.” 여대생 서예림씨는 일주일 동안 느낌 감정과 그의 원인을 두 단어로 일축했다. 특별한 설명도 없었지만 주변에 앉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움, 그분.” 직장인 박환철씨는 얼마 전에 끝나버린 만남에 대한 마음을 털어놨다. “저는 이제 마음에서 그 사람을 보내려고 해요. 항상 그 사람 생각뿐이었는데 오늘을 마지막으로 해야겠어요.”

  마음얘기의 두 번째 코너에서 사람들은 쓰리룸 곳곳에 붙어 있는 시와 그림 중 마음에 드는 작품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좬상실의 시대좭의 한 구절을 집어든 최아름씨는 그 구절을 읽으며 말했다. “저는 아동보호기관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 구절을 읽고 항상 저처럼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이날 사람들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작품은 김형영의 「낮은 수평선」이었다. ‘나 같은 것/ 나 같은 것/ 밤새 원망을 해도/ 나를 아는 사람 나밖에 없다’ 이 시를 받아 든 조슬기씨는 “이 작품이 인기가 많을 줄 알았다”며 “오늘의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현동 쓰리룸의 소셜다이닝은 피터아저씨의 작은 음악회로 마무리 됐다. 베테랑 손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맥주와 과자 안주를 꺼내놓았다.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은 장난꾸러기 강아지 티니도 얌전하게 만들었다. 손님들이 아쉬운 발길을 돌린 시간은 오후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하얀 현관문을 나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피터아저씨의 노래로 소셜다이닝이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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