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맞춤박물관의 전경.

 

 

 

 

 

 

 

 

  개강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모든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새내기들이 슬슬 학교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고학년들에겐 별 반 다를 것 없는 학기 초의 풍경이다. 이쯤 되면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곤 한다. ‘뭐 새로운 거 없나?’

  안성캠 학생들이 정문을 지나 학교로 향할 때 늘 지나는 곳이 있다. 바로 안성맞춤박물관이다. 무심코 지나치곤 하지만 ‘저기엔 뭐가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궁금증을 모두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30분이면 충분하다.

안성의 특산품, 유기

  ‘안성’하면 익히 들어본 라면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안성맞춤’이다. 조선시대 안성 사람들은 손으로 직접 빚고 정성스럽게 달구어낸 유기를 장에 내다 팔았다. 유기는 놋그릇을 말하는데 당시 장에서 가장 핫한 물건이 바로 유기였다. 특히 양반들이 사용하는 맞춤 유기가 가장 유명했다. ‘안성맞춤’이란 말은 여기서 생겨났다. 구리와 합금으로 만들었지만 어쩐지 화려하기보단 정갈한 느낌이 난다. 그래서 장금이가 임금님께 바치던 수라상에도 유기가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안성의 문화

  유기전시실을 지나면 기획전시실이 나온다. 이곳에서 ‘숨겨진 문화재 안성의 보물’ 전시회가 3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고려 시대를 풍미했던 불교문화의 자취를 살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불상 안에 있는 ‘복장유물’을 공개하고 있으니 평소엔 볼 수 없었던 것으로부터 신비로움을 느껴보아도 좋겠다.

  이제 좀 더 안성 사람들의 생활상을 파고들어 보자. 2층으로 올라가면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이 ‘농업 역사실’이다. 지금도 그렇듯 안성 사람들은 농경으로 생업을 이었다. 농업역사실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인 안성의 전통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넓고 비옥한 땅 덕분에 안성의 농부들에게 고된 노동은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매일매일 힘든 일상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흥을 돋울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남사당놀이’다. 남사당패는 태극 빛의 도포를 입고 북과 장구의 흥겨운 리듬에 맞춰 상모를 돌린다. 조선시대에 대원군이 농민들의 노고를 달랠 만한 것을 찾다가 만들었다는 남사당패는 한양에 불려 올라갈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지금으로 치면 ‘행사의 여왕’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남사당패는 지금까지 그 맥이 이어져 ‘안성맞춤랜드’에 가면 전문 극단이 직접 공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화관광해설사 안영미 씨는 “안성을 알려고 할 때 가장 먼저 거치는 곳이 이곳이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가 있는 고장은 말 그대로 ‘학교가 위치한 곳’이거나 등하교시 ‘거쳐가는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능성의 터전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지내기엔 안성은 너무도 가까운 곳이다. 개강을 맞아 박물관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내려가며 푸르른 기운들도 함께 느껴 보자. 맑은 공기와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곳이 바로 안성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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