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를 체포했다. 그런데 이 남자,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너무나 평범하다. 정신과 전문의는 그에게서 비정상적인 부분을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외려 본인을 비정상적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평판도 나쁘지 않다. 직장에선 성실했고, 가정에선 따듯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살인조차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결과라 주장하는 그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장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이토록 평범한 남자가 어떻게 살인마가 될 수 있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대한민국 수험생(60만 명)의 열 배나 되는 인원이 살해당한 것이다. 아이히만은 학살에 앞장선 사람 중 하나였다. 이스라엘에서 열린 재판에서 그는 결백을 주장했다. 유대인 학살은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것은 공직자의 양심에 따른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스스로를 평범한 군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교수형을 당했다. 독일 출신의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를 보며 평범함 속에 깃든 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이는 평범함이 곧 악이라는 뜻은 아니다. 평범함으로부터 악이 싹틀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녀가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평범함에 이르기까지의 무사유’(無思惟). ‘무사유생각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평범한 아이히만이 악행을 저지른 것은, 본인의 행동이 타인과 사회에 미치게 될 영향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임무에 충실한 공무원으로서 고민 없이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서류의 내용은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의 생각하지 않음은 악의 시발점이 됐다. 이처럼 악이란 평범한 행위의 결과로도 얼마든지 출현 가능하다. 특히 생각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행위는 악행이 될 위험이 크다.
 
개강을 맞이하여 학교가 북적인다. 학생들의 얼굴엔 들뜬 표정이 역력하다. 저마다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도서관은 벌써부터 빈자리를 찾을 수 없다. 해방광장에서는 동아리 홍보가 한창이다. 학생회실은 새로운 인연을 맺으려는 신입생들로 넘쳐난다. 캠퍼스 곳곳의 벤치에는 연인들이 앉아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모두 평범한 대학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의 평범함 속에서도 악은 등장할 수 있다.
 
아이히만과 같은 극악무도한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한 대학생활이 무사유의 결과에 그친다면, 그것이 타인이나 사회에 미치게 될 영향은 부정적일 수 있다. 평범한 대학생활이란 무엇인가. 학업, 우정, 연애, 취미활동 등을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타인에게 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 없이 평범한 대학생활에 몰두하는 동안 학생들의 수업권 및 자치권은 축소되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이다. 학내 구성원인 청소노동자들은 우리의 평범한 대학생활을 위해 앉지도, 노래하지도 못하며 일해야 했다. ‘생각하지 않음이 만들어낸 결과들을 두고 이라 평가하는 것은 과장일까.
 
지난겨울 대학에 불어 닥친 안녕들하십니까열풍은 무사유에 기반한 평범한 대학생활에 대한 반성이었다. 아이히만은 고민 없이 나치의 신념을 실천에 옮겨 살인마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도 세상이 정의한 평범한 대학생활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며 업을 쌓고 있는지 모른다. 새 학기에는 평범함을 벗어나 비범해지기를 시도해보자. 대학생활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대학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고민해보고 함께 실천해보자. 만약 대학에서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고,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것이 비범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비범해져도 좋다.
김대원 학생
독어독문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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