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낙성대다
무엇이든 가득 차면 넘치기 마련이다. 젊음의 중심지라는 홍대도 그러하다. 락, 재즈를 비롯한 인디음악은 과포화된 홍대에서 숨쉬기 어려워졌다. 흘러나온 인디음악의 선율은 상수동과 합정, 이태원을 지나 이곳, 낙성대로 들어왔다. 시끄러운 조명대신 조용한 골목 사이에 움트고 있는 음악과 문화의 기운을 느껴보자. 
 
 
   
 
  짜다. 전파를 타고 오는 대중음악은 인공으로 맛을 낸 조미료가 첨가돼 있어 짜고 자극적인 맛을 낸다. 인공첨가물에 익숙해진 우리의 혀는 계속해서 더 ‘강한’ 맛을 원하게 됐다. 더 짜고 더 매운 맛. 한 잔의 물로도 가시지 않는 자극적인 맛. 하지만 조미료를 넣지 않고 오랜 시간 푹 끓인 곰탕처럼 담백한 맛을 내는 음악이 때로는 대중들의 미각을 더 사로잡는다. 인디음악, 젊은 층 사이에서는 지쳐버린 오감을 채워줄 레시피다.
 
  어디에 있을까. 가수 10cm의 어느 노래 가사처럼 ‘그대 없는 홍대 상수동 신촌 이대 이태원’뿐만은 아니다. 메이저 상업 음반사로부터 독립해 활동하는 인디음악은 본디 그 특성처럼 대로변을 지나 골목 여기저기로 스며들었다. 10여 년 전부터 명맥을 이어온 라이브 클럽에서부터 좁디좁은 골목 사이로 인디음악의 선율이 움트고 있다. 관악산과 서울대학교를 배후로 자리 잡은 낙성대, 바로 그곳이다.
 
  낙성대역 4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라이브 클럽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삼거리를 만날 수 있다. 인디음악의 메카 홍대를 상상했다면 혹자는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젊음의 기운이 팽배한 홍대 거리 대신 정감 가는 골목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건물, 한산한 도로, 인적이 드문 골목들. 소위 ‘뜨는’ 동네라고 하기엔 비교적 조용하고 한산하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조용했던 거리에 하나둘 불이 켜지면 낙성대의 분위기가 낮과는 사뭇 달라진다. 한 산한 골목의 정취와 라이브 클럽의 선율이 맞닿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낙성대로 삼거리’가 특색에 따라 나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삼거리에서부터 북쪽은 라이브 클럽이 주를 잇는 구역, 그리고 서쪽으로는 골목 사이로 자리를 튼 카페들이 모여 있는 구역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하는 골목
  반짝이는 미러볼 아래로 준비된 드럼과 키보드,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기타와 음반들. ‘라이브 클럽 구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다.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지난 12월에 문을 연 신생 라이브 클럽 ‘사운드 마인드’다. 인디밴드로서 활동을 해 온 사운드 마인드 이재훈 대표는 그간 음악 활동을 위해 홍대에서 터를 잡았다. 하지만 홀연히 다시 낙성대로 돌아와 지인들과 함께 인디밴드의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라이브 클럽을 차렸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다. 사운드 마인드는 돈 없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대관을 해주기도 하고 인디음악가들을 위한 기획도 준비하기 때문이다. “음악 하는 학생들에게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서 지속적으로 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 친구들한테도 좋겠지만 기획자인 저한테도 좋은 기회거든요.”
 
  무대 위 연주자들과의 거리는 50cm. 어쿠스틱 기타반주가 짙게 깔리는 이곳에서 그들과 눈을 맞추며 공감하는 사람들에게도 휴식처 같은 곳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홍수빈씨(29)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러 이곳을 자주 찾는다. “음악을 즐겨 듣는데 홍대는 멀고 복잡하잖아요. 가까운 동네에서 이런 인디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친근한 느낌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죠.”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얼굴에서 젊은 미소가 가득하다. 사운드 마인드라는 이름처럼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건강한(sound) 분위기도 낙성대에 함께 번지고 있다. 
 
  사운드 마인드를 나와 길을 건너면 ‘재즈 앨리’가 있다. 골목(alley)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이곳은 매일 오후 8시 즈음이면 재즈 라이브 선율이 공연장을 메운다. 입구에 들어서면 짙은 색소폰 음색과 리드미컬한 박자가 흘러나온다. 재즈 특유의 자유로움이 곁들여진 칵테일 한 잔을 더하면 더할 나위 없다.  
 
  사실 ‘재즈’ 하면 양복을 차려입은 중후한 신사들이 관객으로 앉아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하다. 재즈 팬들이라면 일상 속의 피로감을 해소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곳이 없다. 재즈 앨리 박창덕 대표는 10년간 이곳에서 재즈 바를 운영해왔다. “이 조그마한 동네에 문화를 공급하는 장소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어요. 연주자들의 활동도 활발해져서 낙성대가 다양한 음악 저장소가 되길 바라요. 또 그런 움직임들을 얼마든지 환영하죠.” 라이브로 물든 거리에 점점 음악 팬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그저 홍대처럼 북적이지 않을 뿐. 반짝이는 네온사인보다 골목의 정취가 정겨운 그곳에 낙성대로 삼거리가 있다.  
 
▲ 20세기 락 음악을 컨셉으로 한 라이브 클럽 '롤링락70's'의 내부. 사진 김영화 기자
 
 재즈 페스타, 골목과 카페에 스며들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기 위한 움직임 중 하나가 바로 ‘골목 재즈 페스타’다. 날씨가 선선해지는 계절이 오면 한산했던 거리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골목마다 소규모 무대가 설치되고 조용했던 거리에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박창덕씨의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된 것은 2년 전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요즘은 몇백 석짜리 극장들, 국제 규모의 페스티벌이 많이 생겨나는데 그런 것보다 작은 규모라도 다발적으로 될 수 있는 행사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했죠.” 축제 기간에는 거리 무대와 라이브클럽의 무대에서 평소에 보기 힘든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재즈부터 락까지, 음악의 선율이 골목과 만나 낙성대를 채운다. 국내에선 최초로 장르 불문의 음악들을 두 블록 상간의 동네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골목 재즈 페스타 기간이 되면 위에서 언급했던 카페 구역들도 더 활발한 생기를 띤다. 카페 구역에는 원두커피 전문점부터 와인, 막걸리를 전문으로 파는 곳들이 이어져 있다. 골목의 카페들도 축제 분위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운드 마인드를 나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보이는 카페 ‘산다’. 커피가 좋아 하던 일을 그만둔 김창원 대표는 축제기간에 카페에서 직접 커피 내리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거리에 전시회를 열어 틈틈이 그려왔던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문화의 붐이란 대학생, 창작자, 예술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한 줌 한 줌 쌓여서 그 여파가 커지는 것을 의미해요. 낙성대는 그러한 예술 문화적 요소가 활발해지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죠.” 골목 사장님들의 교류가 발견되면서 낙성대의 문화적 움직임도 함께 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건물과 차로 붐비지 않는 조그마한 동네가 사람들을 이끈다. 청년들의 젊음이 담긴 인디음악부터 10년간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은 중후한 재즈 음악 그리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풍의 락까지. 골목골목마다 음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즐기러 가는 곳이 아니다. 집 앞을 나설 때처럼 운동화에 티 한 장만 걸치더라도 즐길 수 있다. 음악을 느끼고픈 마음만 있다면 골목에 스며든 라이브 클럽의 선율을 부담없이 만끽할 수 있는 낙성대, 바로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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