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라는 가사가 있듯 졸업생들에게도 4년간의 대학생활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던 시기에 대학생활을 했던 만큼 올해 졸업생들에게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추억의 장소가 많을 것입니다. 졸업생들이 학교를 떠나면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게 되겠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졸업생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문화와 추억의 장소를 담았습니다.

 

 

  <졸업의 문턱 앞에서 “그땐 그랬지”>

  불과 5년여의 시간이지만 졸업생들의 회상은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캠퍼스 이곳저곳부터 학내 분위기까지 많은 것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몇 년간의 추억은 이제 그들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졸업의 문턱에선 그들의 ‘과거’는 어땠을까. 졸업생들의 그때 그 시절을 되돌아본다.

 

▲ 엄격한 통금에 학생들은 창문으로 탈출을 하는 호기를 발휘하곤 했다.

기숙사 통금에 울고 웃던 그들

  하지만 생활관 문이 일찍 닫혔다고 추억도 짧았던 것은 아니다. 엄격한 통금 시간의 피해자였던 양정욱씨(무역학과 07학번)는 생활관에 남다른 추억이 있다. 지인의 생일이던 12시가 지나자마자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그는 생활관에 갇힌 처지였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의 눈에 2층 화장실 창문이 들어왔다. 긴가민가하던 그는 용기를 냈다. 바로 화장실 창문의 모기장을 뚫고 뛰어내린 것이다. “보일러실이 올라와 있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슬리퍼가 지붕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많이 다쳤어요.” 우여곡절 끝에 생활관 탈출에 성공한 그에게는 한 짝의 슬리퍼만이 남아있었다. 결국 맨발로 지인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게 된 사연은 졸업을 앞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 수많은 루머를 남긴 채 고니부부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고니, ‘돌싱’이 되다.
  2012년 이후에 입학한 안성캠 학생들은 연못의 외로운 고니 한 마리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고니에게는 짝이 있었다. 과거 한 쌍의 고니들은 연못을 유유히 헤엄치며 울음소리를 주고받는 애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고니들의 부부 싸움이 격앙돼 가끔은 생활관생들의 밤잠을 깨우기도 했다.

  그러던 2011년 7월, 고니 한 마리가 실종됐다. 폭우로 연못이 넘친 날 감쪽같이 사라진 것. 사라진 고니를 두고 수많은 루머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고니 이혼설’부터 ‘고의적 도난설’까지 숱한 의문만 남긴 채 고니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두 가닥으로 울리던 고니들의 이중창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이제는 ‘돌싱’이 된 고니를 보며 졸업을 앞둔 안성캠 학생들은 그 당시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윤윤영씨(피아노과 10학번)는 “수상무대에서 고니 두 마리가 우는 모습을 많이 봤죠. 서로 사이좋게 시소 소리를 내면서 울던 모습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제는 사라진 한 마리 고니처럼 학생들의 추억도 세월 속에 남게 돼 졸업생들은 더 아쉬운 마음이다.

 

▲ 무인관리시스템이 없던 시절 학교에 갇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학교 탈출 넘버원
  영화 ‘쏘우’나 ‘큐브’처럼 밀실을 탈출하는 스토리는 때로 인간의 공포감을 극으로 끌어올린다. 영화 같은 이야기가 설마 현실에서 일어날까 싶지만 4년 전 중앙대에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언제든 학생증만 있으면 출입이 자유롭지만 2009년에 무인관리시스템이 설치되기 전까지 한밤중이 되면 학교의 문은 굳게 닫혔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류지환 학생(신문방송학부 4)은 신입생 시절 의도치 않은 모험을 했다. 과방에서 공부를 하다가 그만 출입문이 닫혀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작은 비상구 하나를 발견했다. “스릴러 영화 속에 나오는 비상구 같았어요. 으스스한 길을 따라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죠.” 생각지 않게 학교에 갇혔던 그는 가까스로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지금이야 추억이지만 당시엔 정말 목숨 걸고 갔었죠.” 가슴 조마조마했던 그 순간도 졸업을 앞둔 그에겐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학교가 많이 변하고 바뀌어서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이제야 돌아보니 학교 여기저기 잊지 못할 일들이 많았네요.”

 

▲ 운동장을 울리던 치어리더들의 응원소리도 사라졌다.

  그 많던 치어리더는 어디로 사라졌나.
  안성캠 단과대 체육대회에서는 매년 과 대항 응원대회를 열었다. 체육대회가 다가올수록 캠퍼스 곳곳에서는 젊은 혈기를 내뿜는 학생들의 응원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들은 바로 안성캠의 치어리더들이다. 밤샘 훈련과 고된 연습으로 학생들의 몸 곳곳에는 파스와 붕대가 떠날 날이 없었다. 공연이 끝나면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고 눈에선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그간 겪었던 노고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2010년 학문단위 구조조정이 진행되자 안성캠의 치어리더 문화는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부 학과는 후배 학번을 받지 못해 자연스레 그 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이후 예술대의 치어리더 문화는 강압적이고 위계적이라는 이유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사라지는 학생 자치 문화에 대해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운동장을 메우던 그들의 함성도 어느덧 조용해졌다. 박태준씨(영어학과 10학번)는 “동아리가 없어져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했죠. 지금은 졸업생의 자리에 서게 됐지만 여전히 아쉽네요”라고 말했다. 더 이상 후배를 받지 못하고 팀의 막내로 남은 그들은 학교를 떠나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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