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을 맞이하는 방식은 교수들마다 다르다. 대부분은 정든 학교와의 이별을 서운해 하며 노후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성규 교수(역사학과)는 그 누구보다 퇴직 이후의 삶을 기대하고 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실리적인 논문을 뒤로하고 이제부턴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밤잠을 이루지 못해요.” 그에게 명예퇴직이 설렘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중앙대 역사학과에서 근무한 지도 벌써 32년이 된 진성규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년퇴임을 앞둔 진성규 교수.
 진성규 교수가 역사학을 시작한 건 그의 인생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참혹했던 순간들과 항상 함께한 데 있다. 6·25전쟁이 터지기 몇 해 전에 태어난 그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정치적 격동기로 대표되는 7,80년대를 거쳐 2014년 현대사회까지 한국현대사와 같은 발걸음을 걸어왔다. “처음부터 역사를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참혹했던 시절을 살면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사 속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역사 속 인간의 행동을 고찰하려 했던 데 반해 학부시절에 배운 역사학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기대와는 달리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배우기만 했어요. 그것도 역사이긴 하지만 단순히 나열된 사실을 암기하다 보니 역사에 흥미를 잃게 됐죠. 그러다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잃었던 흥미를 되찾았죠.” 
 
 그가 역사학자로 우뚝 서게 된 것은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사 전공자들이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되는 것이 바로 한문인데 진성규 교수는 이미 어렸을 적부터 한자가 더 편한 생활을 해왔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던 50년대 경남 예천에는 서당이랑 향교가 있었어요. 서당을 다니면서 한자를 배웠었고 학부시절에는 교수들이 직접 한자 해석을 부탁할 정도로 한자에 능통했죠.” 교수가 됐을 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32년간 제자들을 떠나보냈던 진성규 교수는 이제 졸업을 앞둔 제자들과 함께 인생의 후반부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한다. 제출용 논문을 양산하기보다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역사적 접근법을 연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주전공인 불교사상사를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을 내는 것이 진성규 교수의 목표다. 
 
 이와 더불어 그는 인생에서 가장 오래 머무른 중앙대 역사학과에 대한 애정 어린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명예교수로서 얼마나 더 학교에 나올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있든 늘 관심을 갖고 역사학과를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내 인생의 대부분을 바친 곳인 만큼 언제 어디서든 애정을 갖고 지켜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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