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졸업하는 10학번 이전 세대들은 중앙대의 ‘격변의 시기’에 학교생활을 했다. 그만큼 지금은 사라져 졸업생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장소가 여럿 있다. 설레는 새내기 생활의 기억이 담긴 그때 그곳을 소개한다.

  아트센터의 사랑방 ‘쿠벅’카페
  카페 ‘쿠벅’은 2012년에 문을 닫을 때 까지 10년간 아트센터의 아침을 열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전시회장과 새로운 카페가 생겼지만 졸업생들에게 쿠벅은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 속 공간이다. 후문은 정문보다 쉴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쿠벅은 유일한 사랑방이었다. 바쁜 걸음으로 수업장을 오가는 학생들에게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선물하기도 했다.

  대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치열한 팀플전쟁의 현장에도 쿠벅이 있었다. 1학년이던 성연화씨(신문방송학부 10학번)는 쿠벅에서 새내기 태를 벗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밤샘 팀플을 하고나서 쿠벅에 앉아 커피 한잔으로 졸음을 쫓으며 ‘아… 내가 진짜 대학생이 되었구나’하고 생각 했어요”

  내가 가장 빛났던 곳, 서울캠 대운동장
  어떤 일이든 항상 ‘처음’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게 마련이다. 어색하기도 하고 긴장됐던 새내기들의 첫 등교날의 기억은 강의실도, 학과 사무실도 아닌 대운동장에서부터 시작됐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떠나기 위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류지환 학생(신문방송학과 4)은 “처음 만나는 동기, 선배들과 함께 버스에 오르던 그 설렘은 졸업을 앞두고도 잊을 수 없는 대학생활의 첫 번째 장면이다”고 말했다.

  대운동장에 어둠이 깔리면 학생들은 맥주 한 캔과 함께 한강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안주삼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혈기 넘치는 남학생들은 낮 동안 쌓인 학업스트레스를 야구공에 담아 시원하게 날려 보냈다.

  대학생활의 꽃, 축제의 메인무대 역시 대운동장에 설치됐다. 눈부신 조명이 운동장 전체 가득 메운 중앙인의 파란 물결을 비췄다. 가장 빛나는 한때를 살고 있는 얼굴들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보였다. 안타깝게도 대운동장은 310관(100주년 기념관 및 경영경제관) 공사로 졸업생들의 기억 한켠에 자리잡게 되었다.

  자유의 상징, 루이스 가든과 할매동산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이 들어서기 이전인 2009년까지는 ‘루이스 가든’이라고 불리는 숲이 정문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7,80년대 학생운동의 현장이기도 했던 루이스 가든은 자유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이영준씨(정치외교학과 09학번)는 ‘총장기 쟁탈 범 중앙인 축구한마당’ 첫 경기에서 예선탈락의 쓴맛을 경험 했던 날 루이스 가든에서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같이 대회에 나갔던 선배, 동기들과 루이스 가든에 앉아 학교 앞 편의점의 카프리가 모두 동날 때까지 술을 마셨던 기억이 있어요. 밤새 술을 마시다 교양학관의 정경계단에서 아침을 맞았죠.” 

  학생들은 볕이 좋은날이면 나무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받으며 할매동산에 올랐다. 성년의 날이면 학생들은 할매동산에서 저마다 아직은 앳된 얼굴로 어른이 된 것을 축복했다. 소풍 온 여학생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술이 덜 깨 시체가 된 남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풍문이 있기도 했다.

  안성캠 생활관생들의 아지트 ‘강산에’  
  과거에는 프랜차이즈 업소보다 깨끗하고, 친절하지는 않아도 가족 같은 따뜻함이 있었던 가게가 많았다. 안성캠의 대학가 내리에는 통금시간을 잊은 생활관생들의 아지트가 있었다. 바로 ‘강산에’라는 술집이다. 강산에 역시 프랜차이즈 업소에 밀려 지금은 사라진 추억속의 장소다.

  이모 같은 주인아주머니의 입담과 따뜻한 만두라면 한 그릇이면 외로운 타향살이도 즐거울 수 있었다. 자정 12시 통금시간이 지나면 주인아주머니는 갈 곳 잃은 생활관생들에게 이불을 내어주셨다. 박찬경씨(국악관현악과 09학번)는 “친구들과 둘러 앉아 밤새 수다를 떨다보면 생활관 통금시간도 쏜살같이 지나갔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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