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비평>


기억과 문화산업

김대원 학생(독어독문학과 4)

서론

전통적으로 역사와 기억은 하나의 대립 항으로 인식되었다. 역사는 보편성을 지니지만 기억은 주관성을 지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단의 기억은 개개인의 기억을 하나로 융합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맥락을 창출한다. 이러한 맥락은 주관성을 띠게 된다. 역사는 이러한 맥락을 파괴하는 탈 마법화의 기능을 수행한다. 모두에게 속하면서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 가치중립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기억이란 당파적인 성격을 지니며 주관을 지닌 사람들의 것으로, 역사는 누구의 것도 아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기억과 역사는 뚜렷하게 구분되는가. 독일의 학자 알라이다 아스만은 그의 책 󰡔기억의 공간󰡕에서 역사와 기억을 구분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현실의 역사가 결코 객관적으로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또한 지배계급에 의해 편집된 기억의 일종이며, 집단에 따라 서술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주관적 기억과 구분할 수 없다. 아스만은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기능기억과 저장기억의 개념을 가져온다. 저장기억이란 선택되거나 편집되지 않은 기억을 말하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 가치중립적 기억이다. 흔히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Fact’와 유사하다. 기능기억이란 아무런 의미 없이 흩어져 있는 저장기억 중 일부를 선택하고, 의미부여하고, 해석하여 맥락을 창출한 것으로 일종의 편집된 기억이다. 기능기억은 저장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되지만 그 과정에서 맥락이 형성되기 때문에 주관성과 당파성을 내포한다. 본론으로 돌아가 다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역사는 객관성을 지닌 사실 그 자체, 저장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되지만 그것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서술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기능기억이 된다. 결국 전통적 인식이 기대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역사란 존재할 수 없으며 역사와 기억은 혼재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억의 주체는 누구인가. 예나 지금이나 기억에 의미화를 시도하는 것은 지배계급이다. 지배계급의 의도에 따라 저장기억이 의미화되어 기능기억이 생성된다. 왜 기능기억인가. 기억이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기억의 의미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신화가 탄생한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이야기한 신화화와 루이 알튀세르가 말한 호명의 과정과 유사하다. 기능기억은 지배계급의 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이 바로 기능기억의 특징 중 하나인 정당화. 정당화된 기능기억이 배제한 소수 혹은 약자의 기억은 지배계급의 기능기억을 거부하는 반작용으로 대두되기도 한다. 이것은 정당화된 기능기억을 해체시키는 탈 정당화된 기능기억이다. 탈 정당화는 기능기억의 두 번째 특징에 해당한다. 정당화와 탈 정당화를 사례를 통해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다. 과거 전두환 정권은 ‘5.18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이를 폭동으로 규정하여 언론에 알림으로써 사건에 대한 기억을 정당화시켰다. 반면 시민 진영에서는 현장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알림과 동시에 군부의 폭정을 비판하는 탈 정당화된 기억을 만들었다. 두 가지 기능기억이 대립적으로 의미화된 것이다. 이를 통해 기능기억의 상반되는 두 가지 특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능기억은 구별화의 특징을 보인다. 이것은 기능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외부와 구별 짓고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지배계급이 그들의 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 기능기억을 제공할 때, 기억을 내면화하는 사람들은 집단적 동일성을 체험한다. 따라서 이들은 지배계급이 의미화 하는 기능기억을 거부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과 스스로를 구별 짓는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기억에 의미화를 시도하는 주체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문화산업을 주도하는 자본가들이다. 과거 정치권력에 의해 의미화 되었던 기능기억이 현대사회에서는 자본가들에 의해 의미화 되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은 정보화 사회, 1인 미디어 사회에 접어들었다. 대중은 네트워크상에 흩어진 수많은 저장기억과 직접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개인적 차원에서 기억에 대한 의미화가 가능해졌으며, 누구나 기능기억을 형성하는 주체가 될 가능성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의 주체가 되려하기보다 정치권력 혹은 자본권력이 의미화 하는 기능기억을 내면화하는 수동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자본가들은 보다 교묘하게 기억을 편집하여 문화산업 자체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가 그의 저서 󰡔계몽의 변증법󰡕에서 비판한 것처럼, 문화산업의 목표는 오로지 이익창출에 있다. 문화산업이 대중을 이익창출의 대상으로 철저히 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문화산업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TV영상물의 사례를 통해 문화산업이 시도하는 기억의 의미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해보고 기억의 객체가 아닌 적극적인 기억의 주체가 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본론

사례1. <응답하라1997>, <응답하라1994>

 

2012CJ E&M의 자회사인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성공에 이어 2013년에는 <응답하라 1994>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케이블 채널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이다. 해당 드라마는 1997년과 1994년을 배경으로 당시의 문화산업에 심취한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를 살아간 현재의 20~30대에게는 향수를, 당시를 경험해보지 못한 청소년들에게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이 보여주는 기억이 편집되고 의미화된 기능기억임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자체를 하나의 기능기억으로 볼 때, 이 기억이 수행하는 기능은 무엇일까. 자본(ex. CJ E&M)이 생산해내는 문화상품과 문화산업 전반에 대한 정당화. 1994년과 1997년 한국 사회에 일어난 정치·경제적 사건들은 드라마 속에서 뉴스 보도나 주변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흩어진 저장기억으로 제시될 뿐, 결코 의미화 되어 주인공에게 경험되지 않는다. 그들이 경험하고 즐기는 것은 당시의 문화산업이 만들어낸 문화콘텐츠다. <응답하라 1997>의 경우 ‘HOT’젝스키스같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팬덤 문화를 통해, <응답하라 1994>의 경우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마지막 승부’(TV드라마), ‘농구대잔치와 같은 문화산업을 즐기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의 삶을 보여준다. 문화산업은 그들에게 갈등요소가 되기보다 사랑의 매개나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작품 속에서 과거의 문화콘텐츠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문화산업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편집하는 것이다. 또한 작품 속에서는 당대를 살아가야 했던 청년들의 사회적 갈등은 배제되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적인 갈등만 나타난다. 당시의 정치·경제적 사건은 배제되거나 저장기억으로 남아 의미화 되지 못한 채 스쳐지나간다. 드라마의 구체적인 내용을 통해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도록 하자.

 

먼저 두 작품의 내러티브는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2012년과 2013년 현재, 고등학교 동창들(1997)과 대학교 동창들(1994)이 한 자리에 모인다. 여자 주인공은 모임에서 결혼 발표(1997)를 하거나 결혼식 비디오(1994)를 보여준다. 남편의 얼굴은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 과거(1997, 1994)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드라마의 전개과정을 통해 여자 주인공이 만나는 남자들 중 미래의 남편이 누구인지 서서히 밝혀진다.

 

먼저 <응답하라 1997>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시원(정은지 분)은 부산에 사는 고등학생으로 HOT의 열렬한 팬이다. 그녀의 부모인 아버지(성동일 분)은 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고, 어머니(이일화 분)은 평범한 전업주부다. 그녀는 대학 입학을 앞둔 고3이지만 HOT 오빠들을 응원하느라 성적은 반에서 최하위를 맴돈다. 그런 그녀가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윤제(서인국 분)과 가까워지게 되고, 윤제의 형(송종호 분)도 시원을 좋아하게 되면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작품에는 이 셋을 제외하고도 에로영화를 비디오테이프로 편집해 판매하는 학찬(은지원 분)과 춤과 노래, 공부까지 못하는 게 없는 엄친아 준희(호야 분)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고3이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수험생의 스트레스는 느껴지지 않는다. 반에서 꼴찌를 한 뒤 시원의 아버지가 그녀의 방에 붙어있는 HOT의 포스터를 모두 뜯어버렸을 때, 시원은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HOT오빠들의 포스터가 아까워 눈물을 흘린다. 윤제나 준희의 경우 이미 우등생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입시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멀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찬은 다른 취미를 통해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들에게서 대한민국의 수험생이 겪는 스트레스는 찾아볼 수 없다. 학교에서 겪는 갈등이라 해봐야 주인공 시원이 교실에 비치된 TVHOT가 나오는 방송을 보기 위해 젝스키스의 팬인 친구와 다툼을 벌이는 정도다. 이 장면은 당시 학교에서 발생한 사회적 갈등을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문화산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고 있다.

 

공부에 소질이 없는 시원은 HOT오빠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팬픽을 쓰다가 글쓰기에 재능을 발견해 졸업 후 드라마 작가가 된다. 이것은 문화산업에 빠진 대중이 바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듯하다. 시원의 성공을 통해 문화산업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윤제가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조인으로 승승장구 한다거나, 윤제의 형이 최연소 대통령에 취임하는 등 대다수의 등장인물이 사회적 갈등 없이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것은 아픈 기억이나 고통스러운 성장과정을 배제하는 전략으로 대중의 상상력을 차단하고 있다.

 

이외에도 짚어볼 문제는 많다. 경제사적 관점에서 1997년은 대한민국이 국치를 겪은 해다. IMF의 구제 금융에 의해 외환위기가 발생한 해이기 때문이다.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는 다음해인 1998년 한국 기업의 몰락과 구조조정이라는 광풍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드라마 속 시원의 아버지는 야구코치로 기업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쫓겨나야 했던 우리네 아버지들과는 다른 전문직종사자다. 이렇게 시원의 가족이 외환위기로 인해 겪는 갈등 또한 교묘하게 배제된다. 이외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이나, 주체사상을 확립한 북한의 황장엽씨 망명사건 등 1997년에는 수많은 정치적 사건이 있었지만 그것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 의미화 되어 나타나는 경우는 없다. 국가적 고통이 수반되었던 1997년이 <응답하라 1997>에 의해 아름다운 추억으로 재구성되는 것은 분명한 왜곡이다. 외환 위기나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적 사건은 문화생산자들에게 관심 밖의 일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생산하는 문화 콘텐츠에서 해당 사건들은 의미화 되지 못한 채 저장기억에 머무르고, 시청자로부터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문화상품인 HOT가 의미화 된다. 그 결과 우리는 1997년을 회상하며 쓰라린 사회적 기억은 뒤로 한 채 즐거웠던 문화적 기억만 떠올리게 된다.

 

이 과정을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롤랑바르트와 알튀세의 이론을 통해 보면 <응답하라 1997>1997년에 대한 기억을 당시 유행했던 문화상품을 재조명하는 과정을 통해 신화화하며, ‘응답하라라는 표현을 통해 ‘1997호명함으로써 그들이 보여주는 1997년이 실제 역사 속 1997년의 전부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기억에 대한 의미화를 시도했던 정치권력과는 다른 태도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이익창출을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응답하라 1994>의 경우를 보자. <응답하라 1994>는 고등학생이 아닌 대학생들의 이야기로 연세대학교가 배경이다. 그들은 신촌의 한 하숙집에 모여 산다. 주인공은 하숙집의 딸인 나정(고아라 분)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작과 유사하게 야구팀 서울쌍둥이의 코치(성동일 분)이며 어머니(이일화 분)은 등장인물들이 거주하는 신촌하숙의 주인이다. 하숙집에는 나정의 남편후보들이 살고 있다. 오빠의 친구로 나정의 첫사랑인 의대생 쓰레기(정우 분)과 경남 삼천포시에서 귀하게 자란 부잣집 아들 삼천포(김성균 분), 쓰레기의 의대 후배이자 충북 최대 규모의 양계장 집 아들 빙그레(바로 분), 전남 순천시 버스회사의 막내아들이자 지역 3대 유지에 해당하는 가문의 해태(손호준 분), 마지막으로 신촌 하숙에는 살지 않지만 그 유명한 강남의 은마아파트에 살고있는 대학리그 최고의 야구선수 칠봉이(유연석 분)까지 총 다섯 명이 남편 후보로 등장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전작과는 달리 주인공 나정이 아닌 그녀의 친구 도희가 인기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열렬한 팬으로 등장한다. 나정은 대학농구 최고의 인기스타 이상민의 팬으로, 그를 좇아 대한민국의 명문 사학 연세대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나정은 캠퍼스 안팎에서 이상민 선수가 아닌 하숙집 남자들과 칠봉이를 만나며 로맨스를 만들어간다.

 

이 작품이 기억을 다루는 방식 또한 <응답하라 1997>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갈등이 아닌 사적인 갈등을 주로 경험한다. 그들이 사회적 갈등을 겪지 않는 이유는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로 꼽히는 연세대 학생인 나정과 친구들, 게다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의사가 될 예정인 의대생 쓰레기와 대학야구 최고의 선수 칠봉이’, 각 지역 유지의 아들인 삼천포와 해태, 빙그레 등은 학벌, 스펙, 돈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엘리트다. 게다가 스무 살 청춘이 겪는 사회적 갈등은 드물 수밖에 없다. 예외적으로 빙그레의 경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진학한 의대가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휴학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가 적성을 찾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곳 역시 문화산업이다.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대학가요제에 도전하지만 탈락한다. 비록 실패에 그쳤으나 현실에서의 꿈을 문화산업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빙그레의 모습은 문화산업을 정당화한다. 드라마가 끝나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으나 아마 빙그레는 가수의 꿈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빙그레 역을 맡은 배우 바로의 본업이 가수인 사실을 보더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나정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번다. 그런데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에서 당시 심각했던 최저임금 문제나 노동 착취문제 등은 다뤄지지 않는다. 통계지표를 분석해본 결과 1994년 상반기 대한민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1085원이었다. 당시 일본의 맥도날드에서 판매되었던 가장 저렴한 햄버거는 210(당시 한화로 약 1500)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보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시급을 제공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나정은 1시간을 일하더라도 그녀가 판매하는 햄버거를 먹을 수 없다. 지나치게 낮은 임금과 노동 착취 문제는 당시 노동계에서 꽤 심각한 문제로 다뤄진 부분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이와 같은 문제나 불만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퇴근길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남자주인공과의 데이트 장면으로 표현되고 있다.

 

때로는 사회적 갈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삼천포의 경우 방학을 맞아 나정 일행과 고향인 삼천포 시에 놀러간다. 고향인 삼천포시에서는 사천시와의 통합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다. 주인공 일행은 삼천포의 아버지로부터 시위에 참여할 것을 부탁받아 그를 따라나선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표현하는 시위의 모습은 실제 80~90년대 대한민국에 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었던 시위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실제 삼천포시와 사천시의 통합 논란이 일던 당시의 무거운 분위기와 다르게 웃음거리가 가득하다. 주인공 일행은 관청 앞에서 막춤을 추는 시위대에게 연고전에서 따라했을 법한 응원무용을 가르쳐준다. 시위를 진압하러 온 경찰에게 시위대 일행은 OOO아들 아니냐?”라고 물으며 웃고, 긴장이 풀려버린 대치상황에서 경찰의 실수로 최루탄이 살포된다. 이에 나정이 최루가스를 마시고 병원으로 후송되는 황당한 설정으로 시위장면은 마무리된다. 높은 학력 덕분에(?) 지역 대표 간 회의에 참석하게 된 삼천포는 진중한 분위기의 회의장에서 통합시의 지역 명으로 ‘3천포‘4을 합친 칠천포시는 어떻겠냐는 다소 황당한 제안을 하여 꾸지람을 듣는다. 이와 같이 비현실적인 시대묘사는 삼천포시와 사천시의 통합논란이라는 저장기억을 기반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오락적 요소가 지나치게 가미되어 기억을 왜곡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1997년 못지않게 1994년에도 다양한 정치·경제적 사건이 있었다. 남한에 전쟁위기론이 감돌게 만들었던 김일성의 죽음이나 성수대교 붕괴, 인육을 먹어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지존파 살인사건 등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회적 이슈들은 TV뉴스나 부모님의 대화를 통해 암시적으로 시대상을 표현하는 데 그칠 뿐, 결코 의미화 된 기능기억으로 등장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응답하라 1994> 또한 저장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지만 당시의 문화산업과 관련된 기억만을 의미화해 문화산업을 정당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례2. <푸른거탑>

 

지금까지 드라마의 사례를 통해 기억을 생산하는 문화산업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기서 기억의 주체는 문화생산자인 자본가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존의 지배계급인 정치권력은 더 이상 기억에 관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여전히 기억에 의미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의미화 하는 기능기억이 그들의 지배구조를 정당화 하려는 순간 시민사회나 지식인들이 정치권력의 기능기억을 탈 정당화하는 기억을 등장시켜 정치권력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정치권력은 과거의 지배계급보다 기억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때때로 자본가들이 문화산업을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존 정치권력에게 도움이 되는 기억의 의미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 때 정치권력은 자본가들과 손을 잡고 문화산업이 만들어내는 기능기억을 손에 넣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TVN의 시트콤 <푸른거탑>이다.

 

<푸른거탑>은 병역의 의무를 지닌 대한민국 남성 대다수가 공감하는 군대이야기를 소재로 제작된 군디컬 드라마. 사실상 시트콤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다. 사고뭉치 이등병(이용주 분)과 하루 종일 일에 치여 정신이 없는 일병(백봉기 분, 정진욱 분), 군기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사이코 김상병(김호창 분), 의욕이 넘치는 분대장 김병장(김재우 분)과 전역을 앞둔 통제 불능 말년병장(최종훈 분)이 등장하는 <푸른거탑>은 군대의 각 계급별 특징을 일반화해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군대가 웃음으로만 추억할 수 있는 곳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병영문화는 매우 후진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의 군 장병들이 부조리 속에서 고통 받고 있으며, 고된 군 생활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푸른거탑>에서는 대부분의 군부대에서 나타나는 실질적 갈등구조는 배제된 채, 극복 가능한 수준의 가벼운 갈등만 표현되고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의 계급별 행동양태는 실제 군대에서 부조리로 해석되어 처벌받아야 할 모습이다. 국가는 모든 병사에게 동일한 병역의 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실제 군대에서는 상급자의 업무를 하급자가 떠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년 병장도 후임병과 동일한 훈련 및 동일한 내무생활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하급자인 일·이병이 고된 업무를 도맡아 하고 상급자인 상·병장이 보다 많은 편리를 누린다. 이러한 부조리가 <푸른거탑>에서는 단순한 웃음거리로 묘사된다. 말년 병장은 일과시간 내내 게으름을 피우고, 군기반장인 상병은 매일같이 실수하는 후임을 괴롭힌다. 이것은 병영문화에서 퇴출되어야 할 악습이지만 우스꽝스럽고 부드럽게 표현(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이길 때까지 가위 바위 보를 시키는 행위 등)되어 시청자가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문화 생산자들은 작품의 소재가 떨어지자 총기오발사고를 희화화하여 표현(사병의 총기 오발사고로 군 간부가 성불구가 됨)하는 등 보다 심각한 왜곡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는 군대에 관한 불편한 기억조차 추억으로 바꾸어놓는 데 기여한다. 군대에 관한 수많은 저장기억 중 무난하고 일상적인 기억만을 의미화 하여 기능기억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하는 기능은 간단하다. 남성들이 공유하는 군대에 관한 기억에 새로운 의미화를 시도하여 부조리한 군대문화를 정당화한다. <푸른거탑>이 희화화하는 군대는 복무기간동안 폭언, 욕설, 인격모독과 인권침해를 겪은 군필자조차 군대를 한 번 쯤은 가볼만한 곳으로 추억하게 만든다. 군 입대를 앞둔 미필자에게는 군대의 부조리를 도전해볼만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것은 군대문화를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수혜자는 높은 시청률로 광고수익을 얻는 자본가와 작품의 인기에 편승해 병역의 의무를 정당화하는 정치권력이다. 국방부는 <푸른거탑>의 후속작인 <푸른거탑 ZERO>의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국방TV’에서는 <푸른거탑 스페셜>이 방송되고 있다. <푸른거탑>이 군 홍보영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국방부 홍보대사로 선정되었다.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이 손을 잡은 사례다. 얼마 전 연예사병 문제가 논란이 되었을 때 <푸른거탑>PD는 이 문제를 방송에서 다루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실질적으로 정치권력과 문화 생산자가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론

지금까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응답하라 1994>를 통해 문화생산자들이 어떻게 기억을 의미화하여 스스로를 정당화하는지 알아보았고, 시트콤 <푸른거탑>을 통해 문화생산자들이 이윤창출을 위해 기존의 정치권력까지도 정당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했다. 서론에서 설명한 기능기억의 구별화에 대한 내용은 특정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집단적 정체성이 형성되고 여타 집단과의 구별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생략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앞선 사례를 제외한 여타 문화상품에서는 기억을 소재로 다루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문화생산자들이 반드시 기억의 의미화를 시도한다고 보기 힘든 것이 아닌가. 이 주장 또한 일리가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앞에서 정의한 문화산업의 특징을 되뇌어보자. 문화생산자의 목적은 기억을 지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창출하는 데 있다. 그들은 대중에게 새로운형식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어려워지자 기억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이윤을 추구했을 뿐이다. 문화생산자들이 모든 문화 상품에서 기억에 의미화를 시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화생산자인 자본가가 과거 정치권력만이 의미화 할 수 있었던 기억을 자유자재로 의미화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포기한 기억의 주체가 될 권리를 자본가들이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동적인 현대인에게 반성의 계기를 제공한다.

 

기억을 이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문화상품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바르트가 주장한 신화를 파괴하는 행위이고 알튀세가 이야기한 이데올로기의 파괴다. 새로운 신화와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형태를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제공된다. 우리는 계속해서 맥락을 읽으려 노력하고 상상해야만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기억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지배 계급이 제공하는 기능기억을 분해하고 파악하여 스스로 의미화를 시도할 때 진정한 기억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발달한 기술과 범람하는 정보는 주체성을 회복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제공한다. 그러나 과거보다 치밀하고 조직적인 이데올로기적 지배형태(문화산업)이 등장해 우리를 기만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만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진정한 현대인이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눈앞에 놓인 것들을 의심하고 그 뒤에 숨겨진 의미를 상상해야 한다. 지금 고민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다.

참고문헌

알라이다 아스만(변학수,채연숙 역), 󰡔기억의 공간󰡕,그린비, 2011.

테오도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김유동 역),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지성사, 2001.

 

당선자 인터뷰: 김대원 학생(독어독문학과 4)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


김대원 학생(독어독문학과 4)은 시사 교양 PD를 꿈꾼다. 독어독문학과 언론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는 전공을 통해서 소양을 쌓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번 공모전에 낸 작품 또한 전공 수업시간의 조별 발표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이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역사, 사회, 정치 등을 배우며 이를 기반으로 폭 넓은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그는 현재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하며 꿈을 향해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


그가 이번 공모전에서 예시로 든 영상은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와 예능 <푸른거탑>이다. “드라마에서 보여 지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드라마로 소비했으면 좋겠다”는 그는 평소에도 대중에게 인기 있는 작품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남들과 조금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의 꿈은 앞으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기가 쓴 글을 열 번은 읽어 봐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요즘 들어 부쩍 글의 중요성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오늘도 매일 1시간 남짓한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하며 쓰고 싶은 글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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