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비평공모 제3회 수필공모

당        선

수       필 : 최원준 학생(아시아문화학부 중국어문학전공 3)
                    「가장 어두운 곳에 스며드는」
사회비평 : 장수민 학생(불어불문학과 4)
                   「청년들에게 강요되는 성공이라는 신화에 대하여」

가           작

영상비평 : 김대원 학생(독어독문학과 4)
                   「기억과 문화산업」

※문학비평 : 수상작 없음


어떻게 진행됐나

중대신문이 주최하는 제9회 비평 공모 및 제3회 수필 공모에 23편의 작품이 접수됐습니다. 수필 14편(-14편), 문학비평 4편(▼8편), 사회비평 3편(▲2편), 영상비평 2편(▼5편)으로 예년에 비해 소폭 감소한 숫자입니다.(괄호안의 숫자는 작년 응모작 수) 공모된 작품은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발됐으며,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인적사항을 지운 뒤 심사위원에게 전달됐습니다.


수필과 문학비평 1차 심사는 이정현 문학평론가(국문과 박사수료)가 맡았습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수필 4편과 문학비평 2편이었습니다. 이정현 문학평론가는 “문학비평이 기존 평가를 답습한 즉흥적 인상비평으로 기운 것 같아 아쉽다”고 답했습니다.


영상비평과 사회비평 1차 심사는 김성윤 강사(사회학과)가 담당했습니다. 예심을 통과한 사회비평과 영상비평은 두 편씩입니다. 김성윤 강사는 “응모작이 줄어든 탓인지 몰라도 비평의식이 돋보이는 글이 현저히 줄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본심은 분야별 전문가인 4명의 중앙대 교수진이 맡았습니다. 문학비평은 문학평론가 이경수 교수(국어국문학과), 영상비평은 영화평론가 박명진 교수(국어국문학과), 사회비평은 백승욱 교수(사회학과), 수필은 고부응 교수(영어영문학과)가 담당했습니다.


최종심 결과 수필, 사회비평에는 당선작이 나왔으나 영상비평은 가작으로 선정되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문학비평에선 수상작이 없었습니다.

 

 심사평


<수필>
성찰의 깊이와 글의 구성이 돋보여

  수필(隨筆)은 그 말의 뜻만 살피면 붓을 따라간다는 뜻이니 마음 내키는 대로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정해진 형식이 없지만 좋은 수필은 글쓴이의 경험이나 성찰을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 잘 가다듬어 기록한 글이다. 

  예심을 통과한 수필은 네 편이었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그곳에 집이 있었다'는 옛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으로 고층 아파트 단지로 변하면서 공동체가 피폐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은 개인의 체험에 치우치고 있어 큰 안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해피캠퍼스'는 대학 생활을 통하여 개인과 공동체가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은 개인과 공동체가 어울려 있다는 점은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의 글 안에 여러 주제를 따로 다루고 있어 각각의 주제는 잘 드러나지만 글 전체를 하나로 엮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가장 어두운 곳에 스며드는'은 현실을 긍정하는 자세를 갖고 있던 글쓴이가 대학의 구조조정 과정을 목격하고 또 피해 당사자가 되면서 현실의 모순과 공동체적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는 과정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글의 제목이 글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으며 곳곳에 보이는 진부한 표현도 거슬렸다. 망설이면서도 하나는 골라야 하겠다는 생각에 '어두운 곳에 스며드는'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성찰의 깊이가 있으며 글의 구성이 잘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모에 참여한 모든 분께 격려를 보낸다. 또한 예심을 맡아준 문학평론가 이정현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고부응 교수
영어영문학과

 

<영상비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기

나에게 건너온 투고작은 '그래비티'와 '기억의 문화산업' 두 편이었다. 비평문 '그래비티'는 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의 SF적 장르의 특징,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의 비교, 작품에 나타난 죽음의 문제 등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논의한 글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여러 특징들을 두루 살펴본다는 의미는 있지만, 독립된 하나의 글이 갖추어야만 하는 통일성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세 개의 주제를 모두 서술하려는 글쓰기 전략은 오히려 독자의 집중도와 글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글의 제목을 ‘그래비티’로 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글 전체의 핵심을 드러내 줄 수 있는 함축적이고 적합한 제목이 나왔어야 했다.


두 번째 투고작인 '기억의 문화산업'은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시리즈와 <푸른 거탑>이라는 TV 드라마를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간 글이다. 이 글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 드라마에 나타난 문화산업적 욕망을 비교적 심도 있게 논하고 있다. 그러나 분석 대상의 선정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것은 작품 선정에 있어 지나치게 필자의 자의성에 기댔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시청 주체를 지나치게 수동적인 존재로 전제한 것도 눈에 거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TV 드라마의 이데올로기 분석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남겼다.
 

고민 끝에 좥기억의 문화산업좦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투고자 모두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함으로써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

박명진 교수
국어국문학과

 

<사회비평>

섣부른 해결책이 아닌 끊임없는 물음

사회적으로 비평의 대상이 더 늘어감에도 사회비평 응모작은 한 손으로 꼽을 만큼 너무 적은 데 늘 아쉬움을 느낀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예심을 거쳐 본심을 진행하는 절차가 쑥스럽게 여겨질 상황이다. 설득보다는 주장이 앞서는 글들도 있었지만, 올해는 다행히 눈에 쏙 들어오는 응모작을 찾을 수 있었다. '청년들에게 강요되는 성공이라는 신화에 대하여'는 좋은 비평이다. 대체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이 비평을 읽다 보면, 왜 지금 시기에 역설적으로 사회비평 응모작이 이렇게 적은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글의 형식을 불문하고 언제나 좋은 글은 ‘감동’이 있는 글이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가 다루려는 주제와 만나는 곳에서 문제를 대면해 이리저리 뒤집고 싸우고 반대로 돌리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자기가 보던 것과는 다른 것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감동의 계기가 먼저 솟아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그 열의가 바깥으로 넘쳐나 다른 사람에게도 그 감동을 나누는 글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비평의 영역에서 이런 감동은, 너무 소소한 개인사에 머물러서도 전달되기 어렵고 반대로 너무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적 담론 속에 머물러서도 전달되기 어렵다. 당선작은 잘 정제된 글쓰기 속에서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하고 있다. 저자 자신에게서 질문이 다른 질문을 계속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한 질문은 다른 질문을 낳게 된다.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좋은 질문들의 연쇄를 경험하게 해주는 글이 좋은 비평이며,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당선작으로 꼽히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백승욱 교수
사회학과


<문학비평>

비평정신의 의미를 되새기며

최근에 우울한 문단 소식을 접했다. 한 유명 소설가가 모 잡지에 연재하기로 한 소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거부당했다는 소식과 제도권 문학을 향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던 한 평론가의 비평문이 정치적인 이유로 게재를 거부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문학적 자유를 위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외치며 일제강점기 이후 자기 검열의 공포에 시달려온 우리 문학인들을 안타까워했던 시인 김수영이 그리운 시절이다. 지난 연말 시를 쓰는 친구들과 문학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거 아니냐고 자조적으로 나누었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려는 것인가. 문학과 비평의 위기가 더 이상 화제조차 되지 않는 이 시대에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문학과 비평이 시대의 요구에 의해 되살아나는 기적이 어쩌면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허황된 꿈을 꿔 본다. 


하지만 희망을 논하기엔 문학비평이 처한 현실은 아직 어두워 보인다. 올해 문학비평 부문의 응모작은 네 편밖에 되지 않았다. 비평의 위기가 다시 한 번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두 편의 글은 예년에 비해 비평적 문제의식이 부족했다. 윤성희의 『구경꾼들』을 분석한 '삶의 은유, 다이어그램'과 조현의 소설집을 분석한 '옛날 옛적 돌고래가 햄버거를 먹었을 때'는 비교적 안정된 문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성의 해석을 넘어서는 도전적이고 패기 있는 문제의식이 아쉬웠다. ‘다이어그램’을 활용한 분석은 단조로웠고 조현 소설을 분석한 글은 다소 산만했다. 감상문과 비평문의 차이가 무엇이며 이 시대에 필요한 비평정신은 무엇인지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 오늘의 아쉬움을 날려 버릴 내년을 기대해 본다.

이경수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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