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초코파이 밖에 없다.” 3년 전 이런 우스개를 듣고 ‘빵 터진 적’ 있다. 사실 말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말도 안하고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과욕일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듯 작년부터 초코파이 광고 카피가 바뀌었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라고. 
 
 이번학기 이 말을 해주고픈 상황이 있었다.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학내에서 설문지를 돌리던 때였다. 설문조사 주제는 ‘캠퍼스 공간에 대한 성별 인식 차이’였다. 해방광장에서 대여섯 명의 학생들에게 설문을 부탁했다. 설문지를 받아든 한 남학생이 문항이 비현실적이라는 듯 말했다. “남학생이 많은 공대나 여학생들이 쓰기에 불편한 거 아냐?”, “같이 있는 사람이 의식되서 불편하면 정신병자지”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말투였다. 옆에 앉아 있던 후배로 보이는 여학생은 “잘 모르겠다”며 답을 피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여학생은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윤경 연세대 성평등센터장은 논문에서 이런 상황을 ‘일상적 침묵’이라 표현했다. 흔히 여학생들이 남학생의 말에 반대하더라도 표현하지 않고, 상황을 회피하거나 조용히 하는 것으로 마치 동조하는 듯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전략적이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지는 않지만 남성중심성이 강한 곳일수록 흔하게 관찰된단다.  
 
 사실 남녀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일은 아니다. 학교와 학생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확고하게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피해 당사자가 아닌 많은 학생들은 조용히 넘어간다. 결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침묵으로 동조한다. 대개는 ‘무기력’한 것이 큰 이유다. ‘내가 말해봐야 뭐 바뀌겠어’하는 마음. 그렇게 학과 구조조정이, 가정교육과 폐과가 진행될 수 있었다. 여기에 이 침묵의 고약함이 있다. 말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으니까. 모르는 건 더 당당하게,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 그 남학생도 설문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더 용감하게 던진 말이었을 게다.
 
 설문조사 결과 총 응답자 194명 중 여학생 71명은 모두 강의실, 도서관, 복도, 과방, 화장실 등 한 곳에서라도 불편을 느낀 적 있다고 답했다. 특히 과방에서 불편을 느낀 여학생 중 48.6%는 ‘다른 사람이 의식되서’ 불편하다고 답했다. 남학생도 33.3%가 응답했다. 그러나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도 불편한 점을 개선하려 노력한 사람은 적었다. 총 응답자 194명 중 강의실에 불편을 느낀 사람은 166명이었지만 개선하려 노력한 것은 13명에 불과 했다. 7%가 조금 넘는 수치다. 도서관, 복도, 과방, 화장실 다른 공간도 마찬가지다.
 
 침묵하는 자의 불편은 영원히 개선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무기력하게 입 다문 학생들의 마음까지 긁어주는 중대신문을 기대한다. 통폐합 학과의 학생, 여학생, 장애인 학생, 중국인 유학생. 생각보다 학교 안엔 불편을 묵인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중대신문이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들의 입을 트이게 하길 바란다.
 
박선희 전 편집장
사회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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