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을 중시하는 이유
손쉽게 사람을 판단하고
경제력 중시하는 풍토 탓

학벌과 인간성 사이에
일관된 경향성 없다
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

 
  학벌은 연애에 영향을 미치는가. 학벌은 사람을 판단하는 지표가 될 수 있는가. 학벌에 대한 그릇된 시선으로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으려면 학벌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달 28일 ‘학벌을 중시한다’는 김형식 학생(가명·예술대), 이주미 학생(가명·사회대)과 ‘학벌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박정수 학생(가명·사회대), 최지영 학생(가명·사회대) 총 네 명이 모여 김헌식 문화평론가의 사회로 좌담회를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학벌을 중시하게 된, 혹은 중시하지 않게 된 계기가 있나.

  김형식(김)
학벌은 개인적인 취향이다. 나는 똑똑한 사람을 좋아한다. 물론 좋은 대학에 다닌다고 똑똑하다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좋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똑똑하지 않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상대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없어 학벌을 묻게 된다. 착하다거나 귀엽다는 주선자의 말은 믿을 게 못 되지 않나.

  이주미(이)
학벌이 낮은 대학에 진학한 고등학교 동창과 사귄 적이 있다. 그 때 부모님과 친구들의 시선이 탐탁지 않았다. “학벌에 걸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남자친구에 비해 네가 아깝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학벌을 중시하게 된 것 같다.

  박정수(박)
나는 문제아가 많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대부분이 지방대를 갔다. 그런 환경의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오히려 학벌이 중요하다는 편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또 충청권 대학에 다니는 여자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학벌 때문에 수준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최지영(최)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사람 됨됨이를 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대학교에 와서 보니 자기 실속만 챙기는 여우같은 친구들도 많더라. 학벌은 높지만 오히려 인격적인 면에 결함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래서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처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학벌로 수렴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다양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이성과 만나는 연애 문화가 결핍돼 있는 것은 아닌가.

  김
맞다. 아버지 세대의 경우 대학생들은 사회 운동의 주체였다. 당시 야학 봉사활동만 봐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은 학벌과 무관하게 섞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소개팅 문화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손쉬운 방법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데 있다. 명문대라고 해서 좋은 사람이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런 문제의식 없이 학벌주의처럼 이름만으로 손쉽게 사람을 판단하려는 게 문제다.

  -주변의 부정적 시선이 문제된다는 말도 나왔다. 다른 학생은 그런 경험이 없나.

  최
그렇게 됨됨이를 보라고 하시던 부모님에게 대학에 다니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난다고 말했더니 “그런 애 만나라고 중앙대 보낸 줄 아냐”고 하시더라.

  김
우리 부모님도 비슷했다. 부모님이 진보적인 편이라 학벌 같은 걸 따지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막상 학벌이 낮은 친구를 만난다니까 언제 헤어지냐고 물어보시곤 했다.

  -주변의 시선에 영향을 받았나.

  이
우리 부모님은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선 ‘좋은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흔히 남자는 성공하는 게 입신양명이고 여자는 시집 잘 가는 게 입신양명이라고 말하지 않나. 이런 말을 많이 듣다 보니 다른 사람의 시선도 많이 의식하게 되고 학벌이 높은 사람을 찾게 되는 것 같다.

▲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네 명의 패널들이 좌담회에참석했다.

  -요즘에는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특정 지역 출신이 많아지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연애에서 학벌이 중요하다는 사고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박 맞는 말이다. 학벌은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는 경제력이나 명예, 권력을 가졌다는 ‘신호’로써 학벌을 보는 거다.
이 난 경제력이나 명예, 권력 등을 따지는 걸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요소들을 다 배제하면 무엇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겠는가.

  김
하지만 이런 현상은 지양되어야 한다. 경제력을 따지는 근본은 ‘어떻게 하면 내가 만나는 사람을 이용해 편한 길을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내가 그 사람에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하면 용납할 수 있겠나. 대부분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주미 학생이 언급했던 ‘여자는 시집 잘 가는 게 입신양명’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박 공감한다. 여성의 지위가 상승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남성위주의 사회다. 그래서 여성들이 남성의 경제적인 부분을 많이 보는 것 같다.

  이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난한 여자가 부잣집에 시집가는 얘기는 많아도 그 반대는 거의 없다. 아직 사회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적다보니 그런 문제가 잔존하는 것 같다.

  최 그건 동감한다. 하지만 남자들이 자신보다 학력이 높은 여자들을 만날 때 피해의식을 갖기도 한다. ‘여자 고학력자는 제주도 해녀보다 선호도가 낮다’는 말처럼 남자는 자신보다 학벌이 높은 여자를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도 있다.

  박 인터넷 카페에서 비슷한 글을 봤다. 고시출신 남성은 인기가 많은데 왜 고시출신 여성은 꺼리느냐는 내용이었는데 댓글들이 다 ‘부담스럽다’는 거였다.
  
  -남성은 정말 자신보다 높은 학벌의 여성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나.

  김
무시를 당하거나 우위를 내줄 것 같아서 그런 거라면 부담스러울 것 같진 않다. 고학력 여성에 대한 일종의 거리낌은 텔레비전을 통해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한다.

  박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고 본다. 남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자가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든지 남자가 여자보다 못하면 되겠냐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다. 학교와 가정에서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심어진 것 같다. 그렇다고 남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첫 만남에서 남자가 더치페이를 하자고 하면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여자도 있다. 남녀 모두 어렸을 때부터 편견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결국 의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부모님이든 친구든 주변 사람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면 학벌과 연애 문제도 개선되지 않겠나.

  최
맞는 말이다. 학벌을 보는 이유가 생각이나 관심사가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함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다니면서 ‘무개념’인 사람들도 많다. 결국 편견을 없애야 하는 문제다. 학벌주의는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치페이 문화만 봐도 그렇다. 예전엔 남자가 음식 값을 내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많이들 같이 내지 않나.

  -학벌주의가 형성된 사회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
대학이 서열화 되면서 학벌주의가 시작된 것 같다. 대학에도 네임 밸류가 있지 않나.
최 동의한다. 내 동기들만 봐도 미팅이 들어오면 학교부터 물어본다. 단국대라고 하면 안 한다고 말하고 연세대라고 하면 꼭 껴달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김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은 것도 문제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 중에서 공부에 흥미가 있거나 적성이 맞아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대학이 입신양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에 다들 대학에 가는 거다. 예를 들어 미용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미용일을 한다면 누가 그를 부정적으로 보겠나. 공부에 흥미가 없어도 대학에 가야 하는 구조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 ‘슬럼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박
많이 공감된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20대 중후반이 되어도 그런 ‘신호’를 줄 수 있는 것은 학벌 하나뿐이다. 그래서 뭘 하든지 학벌에 대해 깐깐하게 따지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학벌 외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최지영 학생은 인식 개선이 해결책이라고 했다. 제도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김
대학의 수를 많이 줄여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박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학벌을 보는 근본적인 원인이 경제력이나 권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기 때문에 대학을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학벌이 다른 것으로 대체될 뿐이다. 따라서 의식을 먼저 개선해야 하고 학벌 외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학벌은 연애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답은 ‘그렇다’였다. 주변의 인식이나 개인적인 편견 때문에 학벌이 연애에 영향을 준 경험은 좌담회에 참석한 학생들 모두에게 있었다. 하지만 학벌이 사람을 판단하는 지표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학벌에 대한 신뢰는 편견과 경제력을 중시하는 불편한 풍토로 점철돼 있었다. 

 

▲ 연애와 학벌주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오갔다.

  기획을 마치며
  우리는 흔히 ‘서연고…’로 시작하는 학벌주의의 고리를 주문처럼 읊으며 대학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학벌주의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학벌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해결은 쉽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에겐 너무 익숙하니까요. 그렇다고 고민마저 무의미한 것은 아니겠지요. 기획의 마지막은 대학생들의 이야기로 매듭을 짓습니다. 네 명의 대학생이 한 자리에 모여 학벌주의에 대한 생각을 나눴습니다.
한 학기 동안 다양한 20대를 만났습니다. 심층기획부의 20대 기획은 오늘로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여정을 함께 해준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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