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도
 국내 최초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가 창과 60주년을 맞이했다. 문창과는 60년의 역사를 한데 묶어 『한국문학 1번지』(작가세계 펴냄)를 출간해 지난달 27일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다. 문창과를 들여다보면 한국문학사가 보인다. 미아리시대, 흑석시대, 안성시대로 이어지는 문창과의 역사에서 한국문학사를 주름잡는 굵직한 문인들이 탄생했다. 지금까지 등단한 문인들은 500여 명이다. 문창과의 역사와 함께 한국문학사를 짚어봤다.
 

 
흔들리는 뿌리 속에
소설(小說)이 아닌 
대설(大說)을 쓰고
시가 아닌 신화를 낳았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現 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가 창과 60주년을 맞이했다. 문창과의 60년은 곧 한국문학사의 역사와 같다. 국내 최초의 문창과로 내딛은 발걸음은 오롯이 문학사에 굵직한 발자국으로 남았다. 문창과가 뿌리 내린 ‘서라벌예술학교’는 일제 잔재로 침식된 민족예술의 혈통을 잇는 유일한 젖줄이었다. 이곳에서 무수한 문인들이 예술혼을 키웠다. 그들이 먹고 자란 시대의 아픔, 굴곡의 역사는 문창과의 그것과 꼭 닮았다.
 
  교사를 마련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서울 용산구에 들어섰던 교사는 설립 1년만에 화재로 전소됐다. 새 교사를 마련할 때까지 약 2년 동안 학생들은 천막교실을 전전하면서도 글은 쥐고 있었다. 서라벌예술학교가 중앙대에 합병된 1972년부터 약 10년간은 흑석동의 밤낮과 함께 문학을 읊었다. 이후 1982년 제2캠퍼스로 다시 이전돼 무대는 안성 내리로 옮겨간다. 미아리, 흑석, 안성으로 수업장이 세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숱한 문청들은 어엿한 문인으로 성장했다. 그렇게 배출한 문인들만 어느덧 500여명에 이른다. 문창과의 60년 역사를 거울삼아 한국문학사를 비추어봤다.
 
  미아리시대(1953~1972)= 미아리시대의 서라벌예술대학은 명실공히 최고의 교수진을 자랑했다. “김동리·박목월·서정주 같으신 분들의 얼굴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며 그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자부심과 함께 천상에서 살아가는 기분이었다”는 김주영 소설가(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58학번)는 미아리시대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그는 대표작 『객주』를 발표하면서 ‘길 위의 작가’라는 칭호를 얻었다. 오정희 소설가(66학번) 역시 “김동리·서정주·박목월이면 되었지 더 무엇이 필요하랴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국내 여성 작가들의 젊은 시대에 가장 선명한 영감으로 기억된다.『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는 “나의 20대의 얼마간은 오정희로 인해 유지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외에도 김종철·오정환·이시영과 같은 시인과 조세희·권유·조승기 등의 소설가가 미아리시대를 대표한다. 방재석 교수(80학번·소설가)는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6·25 전후 당시 민족적 문화를 이끌어간 유일무이한 대학이었다”고 말했다.
 
  흑석시대(1972~1981)= 흑석시대는 여러모로 어지러웠다. 밖으로는 독재 정권에 맞선 뜨거운 투쟁이 계속되었으며, 안으로는 중앙대와 합병되었다. 이승하 교수(79학번·시인)는 “광주민주항쟁은 어찌 보면 나의 20대를 짓누른 일종의 십자가였다”고 고백했다. 그 시대에는 성실히 학문에 정진하는 것이 곧 죄악이었다. 혁명하지 않는 이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시국이 엄중해 동인들끼리도 치고받고 싸움을 벌이는 것이 일쑤였던 혼돈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흑석동으로 둥지를 옮긴 문창과는 서라벌홀  세 개 교실을 사용했다. 그마저도 학과 사무실을 제외하면 수업을 듣는 강의실은 두 개뿐이었는데, 문창과 학생들에게 그 공간은 더없이 애틋했다. 방재석 교수는 “우리끼리 문집을 낼 때 이름을 ‘2504시대’라고 붙였다”고 회상했다. ‘2504’는 문창과가 사용하던 강의실 호수에서 따온 것이다. 채 10년에 이르지 못하는 짧은 시기이지만, 흑석시대에 배출된 문인들은 면면이 화려하다. 특히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베스트셀러를 빚어낸 작가들이 흑석시대에 대거 배출됐다. 『소설 토정비결』의 이재운 소설가(78학번), 『남자의 향기』의 하병무 소설가(79학번), 『가시고기』의 조창인 소설가(79학번), 『눈물꽃』의 김민기 소설가(79학번)가 모두 이 시대를 딛고 일어선 이들이다. 시 부문에서는 남진우 시인(79학번)과 이승하 교수가 문단에 진출했다. 그러나 안성에 제2캠퍼스가 건립되면서 흑석시대는 짧은 영광을 뒤로하고 새로운 역사와 마주한다.
 
  안성시대(1982~)= 흑석시대의 막이 내리고 1982년 안성시대의 막이 올랐다. 중앙대가 경기도 안성에 제2캠퍼스를 건립하면서 예술대가 이전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젖줄을 꾹꾹 빨며 허전함을 달래던 학생들은 미아리시대·흑석시대 못지않은 글을 토해냈다. 그 대표적인 문인으로 꼽힌 박민규 소설가(87학번)는 안성시대를 떠올리며 “글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모여 바보를 고집하고, 바보로서 세상을 살피고 견디는 법을 체득했다”고 말했다. 그의 저서로는 한동안 각 서점가마다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등이 있다. 이외에도 『빨치산의 딸』의 정지아 소설가(84학번), 『늑대』의 전성태 소설가(89학번),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의 김민정 시인(95학번) 등이 안성시대의 맥을 이어갔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점 중 하나는 바로 장르의 다양성이다. 젊은 세력답게 안성시대 문인들은 순수문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서 실험적으로 도전했다. 그 결실로 <국희>, <서울 1945년>, <패션 70년대>의 정성희 드라마작가(88학번)와 <다모>, <주몽>, <계백>의 정형수 드라마작가(89학번) 그리고 <싱글즈>, <미녀는 괴로워>, <남자사용설명서>의 노혜영 시나리오작가(95학번)가 탄생했다. 정형수 드라마작가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나는 ‘문인사관학교’라고 불리었던 중앙대 문창과와는 그 이미지가 참으로 먼 화성인이자 무골이었다”며 “문학이란 끈을 놓지 않은 결과 결국 대하소설에 가까운 드라마 대본을 업으로 살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 지난달 27일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에서 문예창작학과 창과 6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아직 안성시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황인찬 시인(06학번)이 얼마 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현대시 문단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대 문예창작학사의 계보를 이으려는 문청들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있다. 문청들의 손끝으로 또 한 번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60년이란 길고 긴 시간 속에서 그들이 냉혹한 시선과 시대와 맞서 쏟아낸 문학은 더는 ‘문학’이 아닌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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