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신문과 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의 공동 주최로 열리는 의혈창작문학상이 올해로 23회째를 맞이했다. 의혈창작문학상은 ‘의혈(義血)’이라는 중앙대의 교훈과 서라벌예술대학 시절부터 내려온 문예창작전공의 유구한 전통을 전국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생겨났다.


시와 소설 두 부문에서 한 사람당 각각 시 5편 이상, 소설 1편(200자 원고지 80매 내외)을 응모 받았으며 작품 공모는 지난 11월 11일까지 진행됐다. 시 부문은 박세랑씨(명지대 문예창작학과 3)의 「붉은 도마 내리치는 시계추」 외 4편, 소설은 김지현씨(숭실대 문예창작학과 2)의 「목구멍 깊숙이」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시 부문 당선 : 박세랑(명지대 문예창작학과 3), 「붉은 도마 내리치는 시계추」외 4편

붉은 도마 내리치는 시계추

울컥,
참치가 온다
얇게 저민 빗소리와 깨트린 아가미

유리조각의 균일한 피톨 속에서
참치가 온다

미래의 다정한 치욕들이
새의 발목을 부러뜨리고
치사량의 죄목들은 지독한 양귀비 향을 피워대며
참치가 온다

뭉개진 어제의 과일처럼
머리에서 가까운 악취처럼

누구도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쓰러진 바닥과
내 슬픈 전설의 시계추들이 
물결무늬 흉터를 새겨놓은, 전신 감옥을 입고서

이 세계의 친절과 어울리지 않는
참치가 온다

뒷걸음질치는 입술과 
붉은 내장을

왈칵, 쏟는다 

 

  모르는 척

진흙 속에서 어깨를 찰랑였지
잇몸이 가려워 못 견디겠어요
하는
지렁이들은 가시연꽃 뿌리를 휘청휘청 맴돌며
적막을 몰고 있었지

투망으로 건져 올린 송사리 떼 
가녀린 꼬리 끝 펜촉을 세워
플란넬 스카프 같은
호수를 깨우고 

열었다 닫았다
쏟아져 내리던 가을밤
두 손을 펼칠 때마다
자꾸만 곤두박질치는 얼굴이 있어
 
웅덩이 속으로 흐드러지던 파문들이
들깨 씨처럼 톡톡,
은하를 터뜨려댔지

별빛 묻어 새하얀 자작나무 
마른 신발들 사이로
짝을 잃은 발자국들이 몸을 뒤척이고

달이 흰 무릎을 켤 때마다
자꾸만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
등 뒤로 휘휘 풀어져 내리던
모시나비 한 마리

밤새
지붕을 들썩이며
미열을 앓고


시 부문 당선자 박세랑 interview

 

끝없이 묻고 또 물었다

-의혈창작문학상을 수상한 소감은 어떤가.
“처음 당선 소식을 듣고 치열했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했다. 기나긴 슬럼프에 지칠대로 지쳐있던 터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목말랐던 기다림에 단비가 내리는 느낌이다.”


-주변 반응도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당선됐다고 말하기가 굉장히 낯부끄럽다. 주변 친구들과 대학 선후배들은 아직 나의 당선 소식을 모른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라곤 부모님인데 나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


-언제부터 시를 써왔는지 궁금하다.
“우연한 계기였다. 경험 삼아 처음 나갔던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 얼떨결이었지만 내게 맞는 분야인 것 같았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오게 돼 시인이란 꿈을 품게 됐다.”


-시를 쓰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물론 있다. 특히나 시는 짧은 문장 안에 적확한 언어와 이미지를 담아야 한다. 수도 없이 생각하고, 내 자신에게 그 이미지에 대한 물음도 던져보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다 보면 어느새 초고가 나오더라. 초고가 완연한 시로 탄생하기까지 끝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아린 추억들에 대한 물음들로 시작됐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들은 아니었다. 처음엔 쏟아내는 글마다 감정 덩어리였다. 나와 그 기억과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서였다. 그렇다고 방관만 할 수 없어 조금은 떨어져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방황을 통해서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들었고 오감으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나와 타협하지 않은 그 순간에, 시가 내게로 다가오더라.(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
“끊임없이 글을 쓸 생각이다. 휴학하면서 일러스트도 새로 배우고 있는데 훗날 그림책 작가로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뭐가 됐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겠다.”
 


시 부문 심사평

시의 윤리와 다른 삶의 가능성


다른 삶은 가능한가.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부정과 긍정은 전혀 다른 삶의 태도를 낳는다. 다른 삶이 불가능하다는 부정은 현실의 질서에 복종하고 순응하는 태도를 낳지만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긍정은 현실의 모순을 부인하고 다른 삶으로 향한 모험을 감행하는 태도를 낳는다. 그것은 시에 있어서도 전혀 다른 언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른 삶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은 현실의 삶과 관성의 언어를 반성하지 않는 시로 나타나지만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입장은 현실의 질서와 언어의 한계를 성찰하면서 초극하려는 시로 나타난다. 시는 어떤 태도와 입장을 지녀야 할 것인가. 당연하게도 시는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긍정의 입장에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언어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윤리를 지녀야 한다. 그것은 시와 삶이 견지해야 할 미적 윤리다.


이번 제23회 의혈창작문학상에 응모한 문청(文靑)들의 작품은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 너머로 초극하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모험으로 뜨거웠다. 그 중에서도 김태우의 좥피부온도좦 외 4편, 양안다의 좥백색 소음좦 외 4편, 박세랑의 좥붉은 도마 내리치는 시계추좦외 4편은 현실의 심연을 깊이 응시하면서 각자의 개성적인 언어로 구축하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김태우는 노동하는 현실과 일상의 고단함을 냉정하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돋보였고 양안다는 현실의 일그러진 모습을 유쾌한 비유와 반어로 그려내는 감각이 새로웠다. 그러나 김태우의 시는 현실에 대한 고유한 시적 인식이 아쉬웠고 양안다의 시는 시적 소재가 함축한 주제 의식이 익숙한 것이었다. 반면에 박세랑의 시는 경쾌하고 거침없는 언어로 솟아올라서 관성적인 삶의 태도와 시의 문법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이끌었다. 그의 언어는 언어를 부리는 재능뿐만 아니라 삶의 풍경 속에 담긴 다른 삶의 가능성을 포착하는 힘을 지녔다. 서정의 안정된 호흡보다 경쾌하고 거침없는 언어로 현실과 끝까지 싸우는 박세랑의 미적 언어를 기다리며 그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응모한 문청들은 빠르고 늦은 시간의 간격일 뿐 끝까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는 문학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문청이여, 시를 써라. 우리는 만날 것이다.

 

 

 

 

 

  송승환 교수(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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