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 학생회장에 출마하려 했던 경험이 있다. 우리 과는 오랫동안 대대로 운동권 정치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학생이 학생회장을 해왔고, 그러한 경험이 없는 내가 과 선거에 출마하고자 한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참여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학생운동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었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학생회에 더 관심을 갖고 학생사업에 참여하게 할 수 있을지를 주로 고민했다.
 
  그런데, 운동권 정치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동기 한 명이 출마를 결심하면서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경선이 되면서부터 몇 명의 말에 의하여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한 순간에 ‘비운동권 후보’로 지칭되었다. 말이 좋아 ‘비운동권’이지 요즘 비운동권은 ‘반(反)운동권’이나 다름없다. ‘비운동권’후보의 선거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 많은 화제들을 묻어버렸다. 또한 내 소신을 제대로 말해보기도 전에 내게 씌워진 이미지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게 하였다.
 
  ‘운동권 대 비운동권’. 이 프레임으로 괴로웠던 것은 ‘비운동권 후보’였던 나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모 대학 단과대 학생회장은 학생복지와 학내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치적으로도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융통성 없는 보수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여 경험 삼아 몇 번 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 헌데 그 일로 인하여 선거에 출마함과 동시에 ‘운동권 후보’로 낙인이 찍히고, 학교커뮤니티는 ‘좌익’이며, ‘종북’과 같은 단어로 거의 도배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한참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억울함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유권자가 후보의 지난 행적이나 소속 정치단체를 고려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볼 수는 없다. ‘운동권 후보’든, ‘비운동권 후보’든 소속된 단체가 있다면, 선거운동에 도움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영향도 받게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권자가 후보의 자질 중에서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 내렸다면 그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은 많은 학생들이 후보의 공약이 뭔지, 기조가 뭔지 알고자하기도 전에 그 프레임에만 갇혀버린다는 것이다. 평소 학생회가 왜 필요한지, 무슨 일을 하는지, 내가 학생회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아무 고민도 하지 않다가 선거 때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프레임에만 빠져서 이건 무조건 옳고, 이건 무조건 그르다 식의 흑백논리로만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성정치판하고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매일 같이 편 가르고 싸우는 그들이 그렇게 좋아 보이던가? 그들은 국민을 분열시켜 일정한 지지를 계속 확보하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아무도 통합을 바라지 않는다. 늘 같은 이야기를 하고, 늘 같은 싸움을 하고,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조금도 없다. 국민들은 스스로가 바라는 것은 생각해내지 못하고 여기에 휘둘려서 선거 때마다, ‘얘보단 쟤가 낫지~’ 타령만 반복한다. 혹,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아무 성과도 거둘 수 없다. 이 꼴이 그렇게 아름답던가?
 
  적어도 학생사회, 학생선거에 있어서는 우리 스스로가 바라는 것을 생각해내자. 운동권이면 어떻고 비운동권이면 어떻고 보수면 어떻고 진보면 어떻고 여당이면 어떻고 야당이면 어떤가? 사회문제면 사회문제, 복지면 복지, 실체도 없는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원하는 것을 명확히 제시해라. 우리가 원하는 것에 부합하면 선택하고, 아니면 선택하지 않는 거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나를 위해 후보들이 경쟁하도록 만들어라. 이 지겨운 편 가르기, 제발 그만두자.
 
홍다예 학생
정치국제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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