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할로윈데이. 8살짜리 조카 녀석이 공주님 옷을 입고 온 집안을 들쑤셨다. 작아서 신지도 못하는 인형의 구두까지 구겨 신고 말이다. 어찌나 재잘거리면서 다니던지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기자는 조카 녀석의 입을 막아보고자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보았다. 단, 지금까지 우리가 익히 알던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기자는 독일의 사회철학자인 ‘이링 페처(Iring Fetscher)’의 주장에 따라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말하자면 전제군주와 왕비가 백성을 착취하던 봉건시대, 부잣집 딸인 백설공주는 자신의 부귀영화가 백성의 피땀이라고 느꼈다. 이에 백설공주는 한 젊은 청년을 만나 반란군에 합세하고, 왕정을 무너뜨려 왕비를 처형했다는 무지막지한 이야기다. 다소 무거운 주제에 알쏭달쏭해하는 조카 녀석에게 이후 이어진 신데렐라 이야기는 조금 냉혈하기도 했을 터.

“너 그것도 알아? 신데렐라 언니들이 유리 구두 신으려고 스스로 발가락도 자르고 뒤꿈치도 잘랐다는 거?”
얼굴이 하얗게 질린 조카 녀석이 구두에 구겨 넣은 발을 쏙 빼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냐! 이몬 뻥쟁이야.”

게슴츠레 째려보던 식구들의 눈총이 얼마나 매섭던지……. 졸지에 기자는 한 아이의 동심을 뭉개버린 문제아로 찍혀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카 녀석에게 산타클로스의 진실을 털어놓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조카 녀석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무심코 버릇이 나와 버렸다. ‘사실’이라 굳게 믿는 자들에게 숨겨진 ‘진실’을 말하고, 그 원망을 한몸에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기괴하고도 무서운 버릇 말이다. 이 모든 게 지난 2년여간의 중대신문 기자생활로서 생긴 버릇이 아닌가 싶다. 수면 위로 드러난 사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진실이란 원석을 찾아내려 백방으로 뛰어다닌 그 시간이 있었기에……. 덕분에 조카 녀석에게 숨겨진 이야기를 누설해 받게 된 차가운 시선도 꽤 버틸 수 있었다.

누군가의 눈엔 기자가 하는 모든 행동이 어설프고 애송이 같았겠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앞에 두고 ‘쫄’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최근 아끼는 후배 한 명이 그 시선이 두려워 끙끙 앓고 있는 게 아닌가.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 때도 수십 번 심호흡해야만 하고, 예측 없이 울리는 벨소리에 바들바들 떨고만 있는 애송이. 짐작건대 그 애송이도 진실을 앞에 두고 크게 혼쭐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진실만을 말하려는 자들과 보이는 사실만 알아도 된다는 자들이 펼치는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 가끔은 너무나 버거워 그 줄을 놓고 싶을 때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 줄을 놓는 순간 더 이상 승자도 패자도 아닌 그저 하나의 구경꾼이 된다는 두려움에 지금까지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문화출판부장 최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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