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추위와 함께 대학입시철이 다가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고, 본격적으로 수시와 정시 준비를 하는 입시생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대학입학 전형이 대단히 복잡하여, 입시철이 다가올 때마다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대학과 학과 선택 때문에 또 다른 시험에 들게 된다.  

대학도 바빠진다. 교수들은 강의뿐만 아니라 논술채점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다. 선진국 대학 교수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국 교수들은 많이 하게 되는데, 입시 채점도 그 중 하나다. 그리고 주무 부처도 차질 없이 입시행정을 수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왜 이렇게 온 나라가 대학입시 때문에 해마다 홍역을 치르는가? 해마다 치르는 입시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는가? 수험생과 학부모에게는 비용과 고통이 문제지만, 사회 전체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제도가 무엇을 위해서 만들어졌고, 무엇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일단 대학에 들어오면,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의 거의 80%를 6개월 이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왜 배워야 하는지를 모르고 입시만을 위해 암기식 공부를 했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 온 순간부터 과거 억지로 암기한 지식은 빠르게 지워지기 시작한다.  

대학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낸 지식이다. 20세기에 전 세계로 확산된 대학제도는 인류 역사 500만 년 중 10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지녔다. 그렇지만, 앞으로 성인이 되어 살아갈 청년 학생들에게 인류의 지식을 가르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인간, 사회, 자연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지식은 놀라울 정도로 많이 축적되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금도 그런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그 결과는 끊임없이 책이나 논문으로 출판된다.    
대학에서 주로 배우는 것은 바로 그런 지식이다. 연구를 통해서 확인된 혹은 검증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운다. 다양한 이론과 많은 연구결과들이 전문적인 지식의 토대를 이룬다. 그런데, 한국 대학에서는 지식을 생산하는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생산된 지식을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지식 습득은 기존 연구결과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얻어진다.

대학에서 또 다른 것을 배운다. 바로 지혜이다. 지혜는 ‘이해’가 아니라 ‘공감’을 통해서 얻어진다. 다른 사람에게 잘 공감을 하거나 사회에 대해서 잘 공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공감을 잘 이끌어 낼 수 있다. 타인에게 공감을 하고 또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함양시키는 것이 지식만큼 중요하다.  

지금 학생들은 앞으로 70-80년을 더 살 것이다. 현재 배우는 지식은 앞으로의 긴 시간에 필요한 지식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하여 지금 학생들이 필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거나 혹은 타인의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무한한 배움의 세계를 넘나들며 자기 주도적으로 지식을 터득하는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대학시절에 자기 자신, 친구, 가족과 친척, 이웃, 그리고 타인과도 공감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런 학생들이 미래 사회를 이끌 수 있다. 기능적인 지식만으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중앙대학이 공감에 기초하여 사회를 통합하고 그리고 한국사회를 여유와 품격 있는 사회로 만들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대학이 되기를 기대한다. 

신광영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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