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화요일, 베스트셀러 동향을 알아보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보았다. ‘sam 베스트’라는 곳에 눈길이 갔다. 교보문고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 ‘sam’은 출시 후 6개월 간 판매 현황을 분석한 결과, 매출 상위 30개 출판사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7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책의 전체 판매 수가 계속 줄고 있는 데 반해 전자책은 대약진 중임을 알 수 있었다. sam 서비스 외 전자책 단권 판매량(전자책 사용자가 sam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단권으로 콘텐츠를 구매, 다운로드하는 양)을 봤을 때도 같은 기간 22.5%가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sam 베스트셀러 1위는 『1cm+』라는 책이다. ‘인생에 필요한 1cm를 찾아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여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으로, 제일기획 제작본부 카피라이터 김은주의 반짝이는 재치가 책의 문면에 넘쳐난다. 1cm는 아주 짧은 길이지만 그 사이는 깊은 틈이나 골이 될 수 있기에 좁히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카피라이터의 인생철학이 재미있는 삽화와 함께 전개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휙휙 넘기면서 읽을 수 있는 이런 책을 독자가 찾는 시대가 되었다.


  2위는 『스위치』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칩 히스와 듀크 기업교육원의 댄 히스가 쓴  이 책은 ‘손쉽게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행동설계의 힘’이란 부제가 잘 말해주듯 성공사례 이야기 모음집이다. 그릇 하나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대생의 이야기, 몰락해가던 브라질 철도회사를 4개의 메시지로 기사회생시킨 한 CEO의 성공담 등 발상의 전환이 성공을 가져온 사례를 죽 소개하며 일상생활에서 아이디어 하나만 잘 떠올리면 대박날 수 있다고 권하는 경영 관련 책이다. 독자는 이런 책을 보며 ‘나도 한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법륜스님의 『인생수업』이다. 세상살이가 참으로 팍팍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스님에게 해결 못한 일에 대해 질문을 하고, 스님은 적절한 대답을 해주는 내용의 이 책 또한 우리 사회의 답답함과 암울함을 반영한 책이다. 종교 분야를 봤더니 법륜스님의 『스님의 주례사』도 이 책에 이어 2위를 마크하고 있다.
 

  종합 베스트셀러 2위는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제3인류』다. 한국에 독자가 워낙 많아 방한도 여러 번 한 그는 『개미』와 『뇌』에 이어 또 한번 대형 베스트셀러를 터뜨렸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일군의 과학자가 생명공학의 힘으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여 신의 영역에 도전하게 된다는 좀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그러나 줄기세포와 복제양 등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을 보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작가는 이 신인류가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되어 어떤 일을 벌일지, 창조자 인간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이제는 소설도 아이디어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3위는 『1cm+』이며 4위는 조정래의 『정글만리』다. 종합 베스트셀러 5위는 놀랍게도 일본 만화책 『원피스』 제71권 ‘괴걸들의 콜로세움’이다. 오다 에이이치로가 쓰고 그린 이 만화책의 열기는 16년째 우리나라에서 식을 줄을 모른다.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으로도 수십 억 원의 수입을 올린 작가는 이 책을 몇 권째에서 마칠지 궁금하다. ‘재미있지만 가볍지 않은 판타지’라는 타이틀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오다의 학력은 대학 중퇴다. 세대가 바뀌어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것이 놀랍고,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일본 만화작가가 이 한 사람만이 아니라 10명이 넘는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6위는 문화콘텐츠 작가 레이먼드 조의『관계의 힘: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기』이다. 책 소개를 보니 “인맥 쌓기에 집착하는 주인공 신. 관리가 아닌 관계 맺기에 있어서는 서툴기만 했던 그가 보이지 않게 스며든 ‘관계’에서 진짜 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방법론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직장에서 상사와의, 동료와의, 부하직원과의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보는 일종의 처세술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외국소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6위로 밀려나 있기에 ‘하루키 거품이 이제 빠지나 보다’ 생각했는데 웬걸, 종합 스테디셀러 코너를 봤더니 『상실의 시대』가 1위를 마크하고 있다. 여전히, 꾸준히 팔리고 있는 하루키의 소설이다.
예전에는 시집은 따로 순위를 매겼는데 이번에 가보니 시와 에세이를 묶어 집계를 내고 있다. 이 분야 1위도 『1cm+』였고 2위는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3위는 정현주의 『그래도, 사랑』이, 4위는 송정림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가, 5위는 이외수의 『마음에서 마음으로』가 차지하고 있는데 10위에 이르도록 시집은 없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매장 담당자를 만나 출판계 동향을 물어보니 ‘앞북치다’를 아시냐고 물어본다. 모른다고 했더니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웅진오피엠에스에서 서비스하는 전자책 브랜드 메키아(mekia.net)가 단돈 900원으로 베스트셀러 10권을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는 ‘앞북치다’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다양한 장르의 베스트셀러를 10권씩 묶어 패키지로 대여해주는 서비스다. 전자책 1권을 일정 기간 동안 빌려보는 기간제와 이용기간 동안 여러 권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정액제의 장점을 결합했다고 한다.
 

  매장에서 하루에 10권만 팔려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다고 하니 책의 시대는 간 것일까.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자 영화시장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e-북 등 전자매체를 이용한 책 읽기가 도서시장을 고사시킬까 공존공영케 할까. 신문이 읽히지 않는 시대이니 책도 이제 한정된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쓸쓸한 마음으로 광화문지하철 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승하 교수
공연영상창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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