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예뻐졌다
  • 중대신문
  • 승인 2013.11.1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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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황부터 밝히자면 귀여운 연하처럼 단풍이 집중을 흐리는 남산 자락 서울시 산하에서 부대끼며 서울시 수돗물 아리수를 벗 삼아 매일 들쭉날쭉한 근무생활을 한다. 새벽에 나가 라디오에 울려 퍼질 내 목소리에 연애하는 설렘을 느끼기도 하고 리포트 준비에 적성이 맞는 건가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래도 이 재미난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터라 종종 부장님께 행복해 보인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이따금씩 꼭두새벽 6시 조근에 부장님의 늦잠으로 데스크에 공백이 생겼을 때 내 멋대로 뉴스를 게이트키핑 해 내보내는 맛도 쏠쏠하다.
 
 쨌든, 그보다 더 중요한 내 요즘은 바로 ‘들어주기’다. 외모와 달리 워낙 술을 못하는 체질이라 술자리에서 곧잘 민폐녀가 되곤 했는데 찬바람 불면서 퍽퍽한 세상살이에 술 한, 두 잔이 위로가 되더니 마음을 뺏겨 버렸다. 1600개가 넘는 전화번호 개수 탓이기도 하겠지만 덕분에 새로운 이와 닿을 기회가 많이 생겼다.
 
 이야기를 듣자하면 이내 깊어진다. 어릴 땐 가진 게 자존심밖에 없어서 살벌하게 철벽을 치느라 아무리 서로를 벗겨도 속살이 전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스스로 가버린 소중한 친구도 잃어 보고, 마음이 아파 병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 탓에 앓아도 보고, 위험한 연애를 하며 나 자신을 싫어도 해보다보니(나름 라임인데 알아보려나?) 어느새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것이 부담되지 않더이다.
 
 세상 탓 먼저 한 잔. 유독 내 주변이 다이나믹한 거 인정. 유달리 내가 오픈하고 싶게 생긴 거 두 번 인정. 속을 까내 보이며 발가벗은 영혼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곧잘 테레사가 된다. 그녀가 그랬듯 이들을 안아줘야겠다는 다짐 수십 번. ‘왜’라는 질문 대신 무게 있는 고갯짓으로, 때론 주체 못할 감정을 토하며 그들을 헤아려 보려 안간힘. 내 마음이 가상했는지 그렇게 한 번 사연을 털어놓은 이들이 후회하는 법은 없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울어버린 그들에게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소싯적부터 본의 아니게 꼬마 상담가 노릇을 하며 많은 이의 구구절절을 DB구축해 놓은 것이 꽤 도움이 됐다. 사랑과 전쟁을 애청해서였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골수팬이여서 일까. 가정사에서 연애, 취업, 건강에 이르기까지 장르불문 다양한 강도의 이야기들도 꽤 높은 역치를 가진 내 앞에서 별로 놀랄 일이 못됐다. 내 앞길 걱정에 앞만 보고 달려가던 때와 다른 게 있다면 조금 느리더라도 사람 사는 맛은 이편이 낫다는 것. 
 
 예뻐졌다. 덕분에 예뻐졌다. 고도의 화장기술과 치렁치렁한 머리 길이도 한몫 했겠지만 한 박자 쉬어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쉼을 내어준 상대에게 사랑을 받다 보니 저절로 예뻐져 있었다. 고작 내가 한 것이라곤 귀를 기울이는 것 밖에 없었지만 그 흔한 들어주기가 간절한 이들이 너무 많았다. 쓰다듬의 결핍이랄까. 누구에게 어떻게 하라 권할 처지는 아직 못 되지만, 쿨한 세상에서 핫한 사람 8할 정도는 나와 줬으면 싶은 겨울이다.
 
변소인 동문
tbs 교통방송 기자
청소년학과 07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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