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문화적 관계가 깊은 나라다. 그러나 전쟁과 식민지배 등의 역사를 거치며 두 국가는 적대감의 분위기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공존해왔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한·일 문화권에서 한국계 일본인으로 살아온 이가 있다. 재일교포 료이치 쓰기시로 학생이다.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사는 그의 인생을 들여다봤다.
-본인이 한국인이란 건 언제 알게 됐나.
“2,3살쯤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시켜주셨다. 다른 재일교포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로 자식들에게 한국인 혈통임을 항상 말씀해주시는 편이다. 그러나 일본식 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스스로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16살 때, 한 달간 호주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심하게 느꼈다.”
-혼란이 온 이유는.
“전통적인 일본인 혈통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일본인이라 생각하며 자라왔다. 그런데 이방인 밖에 없는 호주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그때 그 친구들에게 내 자신을 한국인으로 소개할지 일본인으로 소개할지 고민됐다. 난 완전한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그렇게 시작됐다.”
 
 평소에 즐겨타는 자전거에 앉아있는 료이치 학생.
 
 정체성에 대한 료이치 학생의 고민은 그에게 한국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료이치는 1년의 한국생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고 한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풀렸나.
“일본인이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단계인 것 같다. 1년 동안 내가 누구인지 뿐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를 배우고 고민을 풀어가고 싶다. 그러나 정체성 고민은 평생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을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한국에선 21살이지만 일본에선 아직 19살이다. 한국계 일본인들은 20살이 되면 한국 시민권과 일본 시민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아마 내년에 일본인 시민권을 선택할 것 같다. 한국인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최소한 한국문화를 잘 알고 그것을 경험해야 될 것 아닌가. 아직 난 한국시민권을 취득할 자격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나 일본 시민권을 선택한 이후에 2차적인 정체성 혼란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정체성을 확립을 위해 한국에 온 료이치 학생에게 한국문화는 아직 친숙함보다는 새로움이 더 크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일본과 가장 다른 점은 경쟁의 정도인 것 같다. 한국사회에선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경쟁이 이뤄지는 것 같다. 대학진학률이 50%밖에 안 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학생들을 무한경쟁의 장으로 내모는 것 같다. 또한 한국사회는 사회적 지위를 매우 중시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어떤 점에서인가.
“열심히 공부해서 중학생들은 좋은 고등학교, 고등학생들은 좋은 대학교, 대학생들은 좋은 직장에 가고자 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처럼 보인다. 한국인들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일본 또한 교육열이 높지 않나.
“일본도 교육열이 높긴 하지만 일본학생들의 절반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 절반은 기술을 배운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부만이 경쟁의 장을 이루지는 않는다. 일본에선 기술을 배워도 공부를 통해 나갈 수 있는 직업군과 동등한 사회적 위치를 가질 수 있다.”
 
 한국사회에 대한 담화는 자연스레 최근 문제시되는 한·일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던 료이치 학생이 생각하는 한·일의 외교문화에 대해 들어봤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한·일관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두 국가가 아직까지 서로 양보하는 자세를 보이지 못하는 것 같다. 광복이 이뤄진 지 7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한·일 관계는 여전히 적대적인 편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역사적으로 수차례의 전쟁을 겪었지만 지금 서로가 서로를 최고의 파트너라 칭할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관계는 우호적일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한일관계는 발전하기 힘든 상태다. 현재 일본정부도 지나치게 우경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외교관계를 악화시키는 만행들을 자행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실제 감정은 어떠한가.
“최근 미디어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비춰지는 일본인의 모습은 매우 반한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사회에서 반한단체들의 목소리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모습이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을 대변하진 않는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입장은 어떤 것 같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한국사회는 일본인들을 더욱 경계하는 것 같다. 물론 이해는 하지만 가끔 지나치게 일본상품을 방사능과 연관시키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즉각적인 한·일 우호관계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서로 양보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후일에 좋은 외교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일관계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찬 료이치 학생이 한국에 온 지 두 달 반. 그 사이 그는 한강에서 자전거전용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는 취미가 생겼다고 한다. 정치에 대한 고민도 고민이지만 그전에 그는 영락없는 대학생이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두 나라 사이에서 긍정적인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남은 그의 한국생활을 응원한다.
 
최현찬 기자 hcc@cauon.net
사진 박가현 기자
 
●한국의 이것에 반하다
“당연히 사람들이다. 일본인들의 성격은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굉장히 무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와 달리 한국인들은 모르는 사람들과도 친분을 쉽게 쌓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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