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문화 및 예술 분야 참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크고 작은 관련 단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연극, 영화, 퍼포먼스, 미술, 음악 등 각종 장르에서 다양한 장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는 2000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 장애운동의 효과가 반영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자 운동의 역사에서 보면, 문화·예술과 운동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 전제하면서 공존한다. 장애 문화·예술 역시 장애운동과 이론의 발전과 분리하여 사고할 수 없다.
 
장애 예술이란?
 
 장애 예술은 첫째, 장애인 당사자가 생산한 예술이다. 비장애인의 작품이라도 장애인 운동과 문화를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라면 장애 예술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있지만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둘째, 유형 또는 무형의 창작물이 미학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반드시 전문가적 기술과 수준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 비록 아마추어라도 얼마든지 장애 예술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셋째, 장애 경험 또는 정체성을 반영해야 한다. 이것은 장애 예술의 내용과 관련된 것이며 장애 예술을 다른 예술과 구별시켜주는 핵심 요소일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이 생산했다고 해서 모두 장애 예술이 되는 건 아니다. 어느 구족화가가 빼어난 솜씨로 난초나 가을 단풍을 그렸다고 해서 그것을 장애 예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런 것은 단지 장애인의 예술 활동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운보 김기창은 명백하게 장애인이었지만 그의 그림은 명백하게 장애 예술이 아니다. 그는 훌륭한 ‘장애인 예술가’였지만 ‘장애 예술가’는 아니다. 반대로, 공옥진은 명백하게 비장애인이었지만 그의 ‘병신춤’은 명백하게 장애 예술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그는 비장애인 예술가였지만 장애 예술을 훌륭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장애 예술은 ‘차이의 정치’다
 
 장애예술운동은 비장애인 사회에 통합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의 자각에서 시작됐다. 흑인과 백인 또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관계에서처럼, 개인으로서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이해와 배려에 기초한 ‘인간관계’의 변화는 가능할지라도 장애인 집단과 비장애인 집단의 정치경제적 이익에 기초한 ‘권력관계’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통합의 정치’보다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차이의 정치’를 장애인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장애인 사회와 문화에 통합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경험에 기반한 문화 영역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성찰의 결과, 정치와 권리 중심의 쟁점이 빠르게 문화·예술의 쟁점들로 이동하고 있다. 
 
 장애예술의 진정한 의의는 다양성의 인정이다. 차별이 아닌 차이로서,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서 그들의 특수한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대중들의 관심과 사회적 지원은 취약한 상황이지만 계속해서 장애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고찰하고 탐색한다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의식 역시도 진보할 수 있지 않을까.
 
최문정 팀원
장애학생지원센터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