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선 개혁을 외친 공화파와 왕정체제를 유지하고자 한 왕당파로 나뉘었습니다. 왼편에 공화파가 앉음으로써 사회의 급진적 변화나 진보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좌파라 부르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좌파와 우파의 개념이 한국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6.25 전쟁이라는 한반도의 뼈아픈 기억 탓인지 좌파는 곧 친북세력, 종북세력으로 통용되며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지탄받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좌파라는 말보단 ‘진보’라는 말을 더 선호하죠. 진보세력일지라도 ‘좌파적이다’는 말은 곧 세력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좌파 꼬리표는 대학사회에서 소위 ‘운동권’ 꼬리표와 상응합니다. 1980년대 민주화를 이끈 진보적 학생집단을 칭하던 운동권이 부정적 의미를 가지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특히 ‘의에 죽고 참에 살자’를 기치로 내걸고 스스로 ‘의혈’을 내세웠던 중앙대의 경우엔 더더욱 말입니다.

혹자는 ‘운동권 총학생회(총학)들의 잦은 학외 활동에 반감을 가져서’라 말했고, 혹자는 ‘운동권 총학들이 학내사안에 제대로 신경쓰지 못해서’라 말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이기에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렵지만 일부 학우들이 과거 운동권 총학에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경험에서 나오는 운동권에 대한 거부감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중앙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과 댓글 중 특정내용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운동권 세력이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의 문제를 공론화시켜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는 추측성 주장뿐 아니라 총학생회 선거(총학선거)가 다가오니 운동권들이 여론을 조작한다는 주장 말입니다.

실제로 총학선거에 출마한 선본 중 어떤 선본도 위의 주장처럼 지지를 호소하지는 않았습니다. 설령 운동권 세력이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의 노조 형성에 관여하였고 지지했다고 해서, 그 사실 하나만으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운동권 세력이 지지했느냐 비운동권 세력이 지지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활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선행돼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의 임금 및 처우 문제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공약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라면 학우들은 선본을 반대할 것입니다. 반대로 실효성 있는 공약이라 생각한다면 찬성할 겁니다. ‘운동권은 아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의 노조결성은 지지한다’는 글까지도 무조건 운동권이라며 비난하는 상황이 아쉽습니다. ‘운동권은 다 똑같다’식의 잣대를 들이민다면 건강한 비판도, 건설한 토론도 이뤄지지 못할 것입니다.

총학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괴소문으로 점철된 선거가 아닌 진실성이 느껴지는 공약들로 학우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거가 되길 바랍니다. 물론 중대신문 역시 중립성과 객관성을 견지해 공정한 선거를 만드는 데 적극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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