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며칠 전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갑작스레 내린 비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내리는 비를 보며 발을 구르던 이들은 임시방편으로 주변의 갖가지 것들을 이용해 비를 피하며 총총걸음으로 흩어졌습니다. 다양한 ‘갖가지 것들’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건 바로 중대신문입니다. 학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 구하기도 쉽고 생각보다 비를 막는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합니다. 입학 이후 줄곧 봐 왔던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입니다.
 
  제가 학보사 생활을 할 땐 신문 구독률을 파악하기 위한 방편으로 매주 신문 배부대 현황을 점검했습니다. 가끔씩 이상하리만치 신문이 빠르게 사라지는 때가 있었는데, 십중팔구 비가 많이 왔거나 주점 등 각종 행사가 있는 주였습니다. 그때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보 구독률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2년마다 한번씩 중앙인 의식조사를 통해 구독률을 알아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수치입니다. 이렇다보니 기자들은 대부분 “요새 내 주변에서 많이 읽더라”와 같은 개인적 경험과 귀동냥으로 스스로 만든 신문의 구독률을 짐작할 뿐입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 한창 신문을 만들고 있는 후배 기자들은 어느 정도로 짐작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년간의 학보사 생활을 마치고 나와 평범한 학생의 입장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확실히 생각한 것 이하입니다. 앞서 언급한 중앙인 의식조사 결과 나타난 구독률도 그리 높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직시절 농담 삼아 중대신문을 두고 ‘1등 신문’이라고 자화자찬하곤 했습니다. 학내 유일한 학보사이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누가 얼마나 읽던 항상 1등이니 구독률을 심각하게 고민할 이유도 없습니다. 사실 저도 신문을 열독하던 시절에 살아보진 않았습니다. 가끔 동문회 등에서 8이나 9가 앞에 붙는 학번의 선배들에게 전해들었던 전설과 같은 시절의 이야깁니다. 한번도 겪어 보지 않았기에 지금의 풍경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주 치열하게 고민하고 꼬박 밤을 새가며 만드는 신문이 단 한자도 읽히지 않은 채 의도한 것과 다르게 사용되는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글쎄요.
 
  보통 이맘때쯤 되면 많은 학생기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이를 두고 흔히 권태기라고 표현합니다. 새롭기만 했던 신문 제작도 어느새 일상의 영역에 자리하고 점차 관성적인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학기마다 수많은 학생기자들의 권태기가 겹치고 겹쳐 지금의 당연한 풍경이 만들어진 건 아닐까 의문을 가져봅니다. 부끄럽지만 저 역시 그 당연함에 한몫 했습니다.
 
  2학기의 반이 지났습니다. 학생기자들이 가장 지치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연했던 일상마저 그리워지는 날이 오기 전에 중대신문 기자들 모두 각자의 권태기를 극복했으면 합니다. 나아가 언젠간 학보와 독자 간의 오래된 권태기도 지나가길 바랍니다. 중대신문이 한 주 한주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정 전직기자
컴퓨터공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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