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이맘때 한 일간지에서 민병훈 영화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영화 <터치>가 전국 12개 극장에서 하루 1~2회 퐁당퐁당 상영(한 스크린에서 다른 영화와 교차 상영)되는 것에 항의하며 개봉 8일 만에 본인의 영화를 자진 종영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마음이 무척 착잡했었다. 그날 필자는 몇몇 지인들과 교차상영의 병폐를 이야기하며 늦은 시간까지 애먼 소주잔에 분풀이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복잡했던 대선정국에서 이러한 분노의 감정이 점차 사라져 가는 듯 했는데 최근 일간지에 소개된 기사 내용이 다시금 당일의 흥분을 떠오르게 한다.
 
  지난달 21일 서울의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서 리얼라이즈픽쳐스, 명필름, 삼거리픽쳐스, 영화사청어람, 외유내강, 주피터필름, 케이퍼필름 등 9개 중소규모급 영화 제작사의 대표들이 모여, ‘리틀빅픽쳐스’라는 영화의 투자 배급을 주업으로 하는 회사를 설립하였다고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가십 기사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상영관과 배급망을 장악하고 자사에서 제작한 영화를 자사가 소유한 상영관에 몰아주는 독과점 횡포에 맞서는 작은 힘들의 반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산업에서 투자, 제작, 배급 및 상영의 대기업 독과점은 오래전부터 개선을 넘어서 개혁의 대상으로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병폐이다. CJ E&M의 CGV,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롯데시네마, 쇼박스미디어플렉스 등 3대 배급사의 한국영화에 대한 상영관 관객점유율은 2012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산업통계 보고서에 의하면 74.1%에 달한다. 2007년 메가박스를 매각한 쇼박스미디어플렉스의 관객점유율 21.5%를 제외해도 52.6%에 달하는 높은 점유율을 보여준다. 
 
  1948년 미국의 연방법원은 대규모의 스튜디오들이 제작, 배급 및 상영을 수직적으로 독점하는 이른바 블록부킹 (BlockBook ing)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하는 파라마운트 판결을 통해 배급과 상영의 동시 소유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다. 이 판결로 파라마운트를 포함한 많은 스튜디오는 자사 소유의 극장을 매각한 후, 제작과 배급에만 전력을 다하여 자국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 개척에 성공하여 지금의 할리우드 명성을 쌓게 되었다.
 
  대기업이 영화 상영관과 제작배급망을 같이 소유하면 철저히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상 자사가 제작하여 배급하는 영화에 스크린을 많이 할당하여 투자금 회수를 용이하게 한다. 극장을 소유하지 못한 중소규모급 배급사 영화는 당연히 스크린 할당을 적게 받게 되고 그나마 개봉 후 수일 내의 관객점유율이 저조하면 교차상영을 통한 조기 종영으로 이어져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진다. 미국과 다르게 한국영화산업에서 게임, 캐릭터, DVD 등과 같은 2차 판권 시장의 규모는 작고 그 수익률 또한 매우 낮다. 입장수입을 배급사와 극장이 서로 나누는 부율이 50:50인 상황에서 스크린 점유율은 곧 배급사 수입의 전부가 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CJ E&M이 올 상반기에 부율을 55:45 (배급사:극장)로 조정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한다.
 
  상영 및 배급망의 독점과 교차상영이 한국영화산업구조에 그대로 고착된다면 제작비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뿐만 아니라 소규모 배급사 영화의 상영기회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많은 영화인들의 제작의욕이 저하되어 다양하고 창의적인 작품 제작을 축소시킬 수 있다. 이것이 한국영화산업 전체의 근간을 흔들어 한국문화산업의 한 축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한국영화산업이 순탄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파라마운트 판결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거나 교차상영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창조경제를 위해서라도.
장성갑 교수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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