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원 컨셉의 카페에서 만난 제임스 학생. 사진 김순영 기자
  기린과 코끼리가 집 앞에서 뛰어다니는 곳이 있을까. 아마 아프리카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자연 속에서 동물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그 곳, 동물의 왕국 아프리카 케냐에서 한국행 유학을 결심한 제임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말 집 앞에서 기린을 볼 수 있나.
“집이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 근처에 있다. 특히 킬리만자로에는 동물들이 정말 많은데 그러다 보니 집 앞으로 기린, 얼룩말, 코끼리가 자주 지나다니는 것 같다.”
-동물원이 따로 필요 없겠다.
“한국에서 동물원을 갔는데 동물들이 너무 불쌍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케냐의 코끼리와는 달리 우리 안에 있는 코끼리가 답답해 보이더라.” 
-동물들이 사람을 해치는 경우는 없나.
“기린은 그런 경우가 없지만 코끼리는 사실 조심해야 한다. 다행인건 계속 동물들과 함께 살다보니 요령이 생기는 것 같다. 코끼리는 앞 눈이 어두워서 사람이 앞으로 지나다니면 잘 알아채지 못하더라.(웃음) 근데 사자랑 하이에나는 가끔 집에 들어와서 가축들을 잡아먹기도 한다. 그런 경우엔 마사이 전사들이 사자를 포획한다.”
-마사이 전사라니.
“케냐에는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는데 나는 그 중에 마사이족이다. 대부분의 마사이 청년들은 마사이 전사가 되는데 그 중 전문적으로 하려는 친구들은 7년간 훈련을 받고 있다. 나도 유학을 오기 전엔 6개월 정도 마사이 전사를 한 적이 있다.”
-동물 외에 케냐의 특징이 있다면.
“커피 농장의 규모가 한국면적만 하다. 그 정도로 커피생산량이 어마어마하다. 외국에서는 케냐 커피가 맛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 양이 워낙 많으니까 맛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스타벅스 같은 카페가 없다고 들었다.
“케냐사람들이 커피를 별로 안 마신다. 물론 마시긴 하지만 한국이랑 비교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안마시면 죽을 것처럼 보이더라. 카페도 엄청 많고. 더 신기한건 카페마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웃음)”
 
동물의 왕국, 커피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가득한 케냐에서 그는 원래 약학을 전공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약사의 길을 과감히 접고 홀로 한국행 유학을 결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약사가 되는 길을 포기하다니.
“고등학교 친구 중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선교사셨는데 병원에서 함께 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약대로 진학을 하게 됐다. 그런데 약대는 내 적성에 맞지 않더라. 사실 약학보단 정치학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던 중 친구 어머니께서 유학을 가서 공부를 더 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한국을 선택했다.”
-정치학이 아닌 경영학을 전공하는데.
“지금 아프리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경영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만 공부한 정치인은 굉장히 많다. 그러나 정치만 공부하면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경영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 꿈이다.”
-현재 케냐의 정치적 상황은 어떤가.
“민주주의가 도입되긴 했지만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대통령 자리를 두고 권력다툼이 벌어져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고, 빈부격차와 실업률이 높은데 정부에선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따로 정치를 공부하기도 하나.
“쉬는 시간이면 주로 도서관에 가서 컴퓨터로 국제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본다. CNN이나 BBC에서 정치뉴스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싶다.”
 
각종 정치 관련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는 제임스에게 사실 한국은 아찔하면서도 흥미로운 나라다. 분단국가이기에 발생하는 전쟁의 불안함 때문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의 안부전화는 기본이고 유학마저 주저하게 만들기도 했던 한국의 아찔한 매력을 들어봤다.
-한국의 첫 인상이 궁금하다.
“케냐에 있을 때는 한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남한과 북한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대부분 한국하면 북한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천공항을 도착하자마자 정말 놀랐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던 것 같다.”
-유학 전 주변에서 걱정이 심했다고.
“한국으로 유학을 결정했을 때 사실 주위에서 반대가 심했다. ‘위험하지 않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천안함 사건이 터지거나, 가끔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됐을 때 몇몇 유럽친구들은 부모님의 권유로 고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심각한데 한국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더라. 처음엔 전쟁이 일어날까봐 무서웠지만 이제는 걱정 할 만큼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웃음)”
-문화적 차이로 생긴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우리 마누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부다처제인 케냐와 달리 한국은 일처다부제라고 생각해 놀랐던 적이 있다. ‘우리’가 ‘our’로 쓰여서 여러 남자의 아내라고 생각한 것이다.(웃음)”
 
●한국의 이것에 반하다
“한국의 대중교통에 반했다. 케냐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약속장소에 가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지하철도 없고 한국만큼 대중교통이 발전하지 못했다. 반면에 서울에서는 지하철만 있으면 약속시간에 맞춰 못 가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이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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