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택과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왕이 되어 권위을 가지려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고, 예뻐지고 싶으면 운동으로 피땀을 흘리거나 수술비를 치러야 하며, 치킨을 영접하고 싶으면 엄청난 칼로리를 책임져야 하죠. 하지만 자기만의 몫이고 책임질 수만 있다면 선택이야 맘대로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오늘 여러분은 저녁으로 치킨을 먹을 거고, 여러분은 후라이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같이 먹을 친구가 양념치킨을 좋아하고 게다가 후라이드를 싫어한답니다. 치킨은 하나만 시킬 수 있습니다. 뭘 시키겠습니까? 후라이드가 싫다는 사람을 설득해서 후라이드를 시킬까요, 아니면 상대의 취향에 따라 여러분의 취향을 포기할까요? 전자를 택한다면 우리는 자유롭게 후라이드를 먹는 대신 상대방의 불평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후자라면, 우리의 불평과 상대방의 만족스런 식사를 맞바꾸게 될 겁니다. 즉 이렇게 우리는 개인의 자유가 자신에게만 영향을 주지 않고 상대방의 자유에까지 영향을 주는 순간, 각자의 자유가 충돌하는 순간, 이야기가 좀 복잡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상대가 후라이드를 좋아하건 양념을 좋아하건 입맛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입맛은 즉 취향이며, 취향은 별달리 문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되려면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법을 어기거나 해야 하는데, 음악 취향이 재즈라고 해서 폐 끼치는 일도 아니고 성적 취향이 동성이라고 해서 범법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외에도 정치와 종교, 영화나 독서 취향 등, 취향이란 동등한 것이며 오늘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중받아야 마땅할 것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가 충돌하는 순간 우린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인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고수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웬만한 대립구도를 만났을 땐 내 편으로 저울이 기울길 바랍니다. 근데 취향이란 건 어디로도 저울이 기울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승리를 기대할 수 없어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따질 것 없이, 그저 좀 다를 뿐이라고요.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자꾸 내 취향 쪽으로 저울이 기울기를 바라는 겁니다. 존중하긴 해야겠는데, 영 머뭇대는 겁니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시원하게 저울질을 관둡니다. 그리고 물러섭니다. 내가 선호하는 것을 상대가 싫어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너는 싫어하는 구나, 그런가보다.” 하면 되는 겁니다. 최소한 그의 취향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우리와 아무리 다르다 해도 제재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취향으로 상대를 압박하지 않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주면 되는 겁니다. 우리의 자유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타인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린 그걸 잊곤 하며, 자유를 펼칠 권리는 나만 갖고 있다는 등, 내 자유만을 주장하고 남들도 똑같이 갖고 있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 행해지는 것인데, 우리는 과연 그런 자유를 행하고 있는 걸까요? 무의미하단걸 알면서도 계속 자신의 것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세상이면 그 권리 마음대로 써도 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면. 수많은 이들의 자유가 맞닿아 있다면. 우리는 마음대로 살되 타인도 마음대로 살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자유로이 내 말을 하면서 타인의 말도 들어야 합니다. 나의 자유를 택하는 대신, 타인의 자유도 지켜줘야 합니다. 이렇게 자유의 권리에는 타인 존중이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고 평화롭게 잘 살아 봅시다.
송유빈 학생
사진전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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