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전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든다. 부모님의 시야에서 벗어나 처음 겪어보는 황홀한 독립.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의 세계라 생각했다. 그래서 외쳤다. “이젠 정말 내 세상이야!” 그런데 웬걸. 내 룸메이트(룸메) 녀석이 말썽이다. 새삼스레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광고문구가 가슴을 찌른다. 그래서 다 같이 고민해봤다. 누구랑? 룸메와 전쟁을 선포한 그들이랑 말이다. 

 

-모두 어떻게 자취생활을 시작했나.
집은 서울이지만 안성캠까지 통학하기 불편해 1학년 때부터 한치의 망설임 없이 기숙사로 결정했다.
바바리 본가가 부산인데 서울로 매일 통학하기엔 웃기지 않나. 그래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
인디언 바바리씨랑 같다. 집이 지방이라 자취방을 얻어 생활을 해왔다. 
 
 
-그럼 지금까지 몇 명의 룸메와 어떤 거주형태로 살았나.
인디언 예전엔 하숙집에 살다 지금은 친구랑 같이 투룸을 구해 살고 있다. 자취방 구할 때 부동산 아주머니가 5층이고 전망이 엄청나게 좋다고 하더니. 역시 상상 그 이상으로 좋았다. 왜냐, 말만 5층이었지 옥탑방이었다. 다들 집을 구할 땐 꼭 직접 가보길 바란다.(웃음)
쭉 기숙사에서만 살았다. 유학 경험까지 합하면 총 7명의 룸메와 함께.
바바리 기숙사 생활 7개월 차인 새내기다. 아직 두 명밖에 경험해보지 않았다.
 
 
-인디언씨 같은 경우 다양한 룸메들을 경험했겠다. 
인디언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웃음) 신입생 때 하숙을 했는데 내 집이 아닌 우리과 아지트였다. 집에 있어도 왠지 모르게 남의 집에 얹혀사는 기분이 들더라. 그 이후 마음이 통하는 친구랑 자취를 시작했다. 벌써 햇수로는 4년째 접어든다.
 
 
-그러면 지금 사는 룸메랑 굉장한 사이겠다.
인디언 굉장하다. 그래서 우린 이제 헤어져야 할 시기가 왔다. 사실 서로 계약만료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고 있는데 끈질긴 인연인 것 같다. 취직이 되면 바로 정리할 예정이다.
 
 
-다른 분들도 인디언씨처럼 룸메와 친한가.
바바리 지금 사는 룸메랑은 2개월밖에 안 됐다.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학기에 같이 살았던 친구는 동갑이라 편했다.
안성캠 기숙사는 입관 전 같이 살고 싶은 룸메를 신청할 수 있어서 동기랑 살았다. 지금은 동기들이 휴학을 하는 바람에  랜덤으로 룸메가 걸렸는데, 역시나 바바리씨처럼 알아가고 있다.
바리스타 친한데 이 친구가 집에 잘 안 들어온다. 보고 싶다. 한번은 집에 들어온다고 하길래 맥주랑 음식을 사놨다. 결국 안 오더라. 그날 밤 혼자 고독히 맥주를 마셨다.
 
 
-룸메와 첫 만남은 어땠나.
처음은 굉장히 낯설다. 그런데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니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더라. 
바바리 첫 룸메 인상은 조용조용한 아이일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만큼이나 수다를 잘 떠는 아이였고, 지금 룸메는 머릿속으로 예쁘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눈이 크고 호리호리한 전형적인 미인형!
 
 
-인디언씨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함께 살게 된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인디언 첫인상? 그것도 너무 오래전의 일이다. 둘 다 복학하고 함께 살게 됐다. 같이 살자고 결심까지 한 사이이니 얼마나 친했겠나. 하지만 4년 정도 지나고 보니 예전에 좋았던 감정들이 다소 감소하지 않았나 싶다. 딱 한마디로 굳힌다면 애증 관계?!(웃음)
 
 
-어쨌든 함께 살다 보면 불편한 점이 있긴 할 것 같다.
바바리 처음엔 좀 고생을 했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살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드라이기 소리가 시끄러울까봐 휴게실까지 가서 머리카락을 말렸다. 그런데 내 룸메는 너무도 자연스레 드라이기를 사용하더라. 
사실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가장 낯설다.
바리스타 불편한 점은 딱히 없는데 청소를 안 한다. 예로 책상이 온갖 잡동사니로 쌓여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룸메와의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풀기 전, YES썰 앞으로 찾아온 몇 가지 사연을 들어보자.
 
♠ 첫 번째 사연 「신입생 히드라」
스타크래프트에 침 뱉는 애 알죠? 이제 그 여자아이를 히드라로 칭할게요. 히드라는 신입생이었어요. 매일 술에 취한 채 기숙사로 들어왔어요. 과장을 좀 보태자면 전 기숙사 생활 초기에 맨 정신의 히드라를 본 게 손에 꼽을 정도예요. 그녀는 항상 꽐라이거나, 준꽐라이거나, 숙취상태로 괴로워했죠. 아무튼 그 역사적인 날도 히드라는 11시 반이나 됐는데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전 한 쪽에 영어책을 펴놓고 발바닥을 긁으며 TV를 보고 있었죠. 기숙사 통금시간인 12시가 되기 3분전, 문이 열리고 히드라는 아우라를 뿜으며 등장했어요. 느낌이 이상하더군요. 
“오늘은 많이 안마셨어?”
“네, 뭐.”
그런데 아뿔싸. 어디선가 들렸어요. 쪼르륵. 쪼르륵. 쪼르르륵. 쪼르르르르르륵. 
거짓말 안 하고 쪼르르륵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았구나 생각했죠. 히드라는 그렇게 차분하고 아름답게 속을 게워내고 있었어요. 오 마이 멘탈! 그 날 저는 제 멘탈의 튼튼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니까요. 
 
-여러분들도 첫 번째 「신입생 히드라」 사연과 같은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바바리 땅이 올라올 정도로 거나하게 취해도 꼭 화장실에서 해결한다. 
인디언 사연을 읽어보면 룸메가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니 술을 먹을 땐 절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 두 번째 사연 「내 바지 내놔!」
저는 기숙사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용 세탁기를 이용하죠. 사건이 터진 날도 여느 날과 똑같이 세탁기를 돌리고 방으로 왔죠.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어요. 저는 헐레벌떡 일어나 세탁물을 수거하러 갔는데 누가 제 세탁물을 정성스럽게 다른 곳에 올려놨더라고요. 주섬주섬 세탁물을 안아 들었는데 제 바지 하나가 없어진 거예요. 심장이 쪼그라들기 시작했어요. 제시간에 가져가지 않은 제 잘못도 있지만 남이 제 옷을 가져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곳에서 죽치고 있어봤자 돌아오지 않으니 마음을 비웠어요.
보름 뒤 기적이 일어났어요. 여느 때처럼 세탁기를 돌리고 시간에 맞춰 제 옷을 찾으러 갔는데, 그곳에 바지가 있었어요. 느낌이 뭐랄까. 잃어버린 강아지를 만난 기분이었죠.
저는 하체가 튼튼한 태양인이라 바지를 수선해서 입는데, 그 검정 바지를 이상한 세탁소에 맡기는 바람에 수선 자국이 다 드러났어요. 그 수선한 자국이 그대로 있는 걸 보니 제 바지가 확실했죠.
저기요! 훔쳐간 바지 없어지셔서 많이 당황하셨죠? 저도 제 바지 늘어나서 많이 놀랐습니다. 그 작은 바지에 비대한 몸 끼워 넣느라 고생한 그에게 한마디 하자면 “다음에는 꼭 너의 하체 사이즈에 맞는 옷 훔쳐 입길 바란다!”
 
-사연을 들을수록 엄청나다. 기숙사는 이런 경우가 흔한가.
바바리 서울캠은 공용으로 냉장고를 쓰다 보니 유사한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예를 들어 맛있는 과자를 넣어두면 다음 날 누가 다 먹고 없다. 그런데 얄밉게도 맛없는 음식은 절대 안 먹더라. 소문으로 들었지만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 손으로 케이크를 먹었다더라. 이거야말로 공유지의 비극이다.
인디언 자취도 마찬가지다. 내 룸메는 식탐이 강하다. 선물로 받은 스팸세트를 자취방에 가져왔는데 3일 만에 혼자 다 먹어치우더라. 그 이후로 나는 맛있는 음식을 집 안 구석구석 숨긴다. 문제는 내가 그걸 어디에 숨겼는지 가물가물하다는 것!
 
 
-룸메 때문에 괴로웠던 순간은 없었나.
인디언 고시 전날 밤이었다. 룸메로부터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전화가 왔다. 친한 후배랑 같이 있으니 술 한잔 하자는 것이다. 장난일 줄 알았다. 그런데 둘이 술을 먹고 집으로 오더라. 어쩔 수 없이 다 같이 잠을 자는데 이 후배 녀석이 무슨 알람시계처럼 15분마다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그렇게 잠 한숨 못 자고 고사장으로 향했다. 
바바리 잠꼬대하니까 예전 룸메가 생각난다. 예전 룸메는 잠을 잘 때마다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공포 그 자체였다.
유학 시절 함께 살던 룸메가 생각난다. 외국은 기숙사 자체가 남녀 구분이 없다. 예를 들어 옆방에 남자가 살 수 있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인 룸메가 버젓이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더라. 너무나도 태연하게 내 룸메랑 잠을 자고 갔다. 정말 충격과 공포여서 어떠한 표현도 할 수가 없었다. 
 
 
-문화충격이 컸을 것 같다. 그 사건 이후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하다.
일단 다음날 룸메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룸메는 미국에 왔으니 미국문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하더라. 덧붙여 자기도 인도계 미국인이라 아시아 문화를 좀 알지만 아시아 특유만의 고리타분함이 싫다고 했다. 자꾸 설득하더라. 남자친구를 정말 사랑하니 집에 데리고 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웃음)
 
 
-주변 사람 반응도 문화에 따라 엇갈렸겠다.
맞다. 친한 미국인에게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하니 미국에선 흔한 일이니 아무 일도 아니라 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라고…. 반면 유럽계랑 아시아계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나중에 결국 내 룸메가 남자친구 집으로 가더라.
 
 
-다른 분들은 룸메와의 갈등을 어떻게 푸나.
인디언 술로 푼다. 우린 고민이 쌓이고 쌓이면 술을 먹자고 제안을 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며 말이다. 문제는 뒷날이다. 너무 취해서 전날 무슨 다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웃음)
바리스타 집엘 들어와야 싸울 거리가 생기는 데 안 들어오니 그리움만 쌓인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자신들은 룸메에게 잘못한 점이 없나.
그건 상대편만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잘못한 게 있다면 하나다. 방에 꼬박꼬박 들어간다는 점?
바바리 첫 번째 룸메에게는 내가 부족했을 수 있다. 그 아인 결벽증이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니 말이다. 그 아이 기준에 맞춰서 청소를 한다고 했는데 별로 성에 안 찼을 거다.
인디언 혼자 청소를 하면서 룸메에게 이상한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신 술병을 다 모아놓더라. 그중 오래된 물이 담겨 있는 술병이 발견돼 바로 버려버렸다. 알고 보니 백두산 천지에서 떠온 물이란다. 아차 싶어 룸메 모르게 다시 수돗물로 채워놨다. 나의 유일한 잘못이다.
 
 
-그럼 자신들은 몇 점짜리 룸메라고 생각하는가.
인디언 70점이다. 깎인 20점은 룸메의 전 여친을 집에 데리고 왔던 것과 10점은 백두산 천지 물을 버린 것.
90점. 깎인 10점은 방에 너무 잘 들어가서다.
바리스타 나도 90점이다. 10점은 예의로 깎는다.(웃음)
 
 
-끝으로 좋은 룸메란 무엇인지 말해 달라.
바리스타 청소를 잘해야 한다. 덧붙여 상대방을 맞춰줄 수 있는 배려도 필요하다. 상대편이 술을 먹고 싶을 땐 술친구가 되어 주고…. 무엇보다 사소함을 채워주는 것이야말로 좋은 룸메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인디언 집에 안 들어오는 게 좋긴 한데 너무 안 들어와도 문제다. 혼자 청소해야 하는 분량이 많아진다. 바리스타씨처럼 서로서로 눈치껏 행동하는 게 현명하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