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내 진보자치언론 <잠망경>을 참 좋아했습니다. ‘간행물의 발간은 총장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학칙이 있음에도 익명을 사용하면서까지 학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권력에 맞서 ‘학교가 아닌 학생을 위한 언론’을 표방하는 용기가 좋았습니다. 소속도, 학번도, 성별 제한도 없는 편집위원 모집 광고 속 드러난 ‘반권위주의’ 문화가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 저는 굉장히 당황스러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시작은 신문방송학부의 한 학생이 ‘대학언론의 위기’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물론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그 흔쾌히는 곧 불쾌감이 됐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직전, 인터뷰를 약속했던 학생 옆에 잠망경 편집위원인, 저의 학과 선배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한 학생 역시 잠망경의 편집위원이라는 것도 이내 밝혀졌습니다.

애당초 협의가 돼있던 주제의 인터뷰가 1시간가량 진행되자 두 사람은 곧 ‘동문특집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인터뷰 전날 밤 보내준 질문지에 추가질문으로 써놓았다고는 하지만, 분명 인터뷰의 목적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추가질문만으로 30분가량 인터뷰가 진행된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혹자는 궁금해 하실 겁니다. 왜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았는가를 말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거절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었습니다. “나도 같이 인터뷰를 진행해도 되겠냐”는 학과 선배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말이 자연스레 튀어나왔습니다. 선후배라는,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에 저 역시 압도당했던 탓일까요. 목적을 알 수 없는 인터뷰는 강행됐고 결국 오프더레코드를 신청했습니다. 약속과는 달리 잠망경의 지면엔 저널리즘의 원칙을 무시한 채 버젓이 중대신문 편집장의 멘트가 실렸지만 말입니다.

이후 후속보도를 준비하며 만난 공식적인 인터뷰 자리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던 학생과 학과 선배는 거듭 사과의 뜻을 내비췄습니다. 취재 과정 중 발생한 문제들 역시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교내 곳곳에 뿌려진 동문특집호 관련 기사를 주워 담기엔 무리였습니다. 

이번 잠망경과 관련된 사안은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번 사례를 통해 의도와는 상관없이 ‘권력관계에 의한 보이지 않는 강요’가 자행될 수 있음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기자’, 그 두 글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을 결코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언론의 위기상황에서, 대학 자치언론들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잠망경 8호<여기 ‘대학언론’이 있다>기획에 나와 있듯 “대학언론의 문제는 매 순간 안일한 태도와 타협하지 않고 싸우며,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가려는 고집스러운 기자들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잠망경이 중심을 잃지 않고 균형 잡힌 자치언론으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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