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타락과 문학의 위기 '해석공동체' 파행적 운영, 분파성 조장 한 몫
  • 중대신문
  • 승인 1997.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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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메타비평의 현주소 '창비'와 '문지' 대결구도 막강..아류 거부하는
새 얼굴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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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날카로운 문학비평이 작품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던 시대는
이미 옛날이라는 의견이 문단계에 팽배해 있다. 이미 낡은 용어가 돼버린 '비
평의 위기', 그 원인은 문학텍스트 자체보다는 문단내 분파주의와 비민주성
에 있다는 의견도 분분하다. 이에 중대신문사 문화부에서는 문화비평의 위기
를 심층 진단해 보며 아울러 발전방향까지 모색해 보기로 한다. 이번 호에서는
맹문재 시인을 만나 문학평론계 내의 '해석공동체'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
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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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은 언제나 무성하다. 다가가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농무에 휩싸인 듯
아련히 어른거릴 뿐이다. 과거의 신비화는 많이 탈각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문
단가(文壇家)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그래서 가끔 수상한 말들이 떠돌기
도 한다. 예컨대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그러하듯, 문단가에서는 근친 상간이
횡행한다는 소문이 있다. 하나의 혈통이 하나의 파당을 형성, 영원한 올림푸스
를 구축하고 있다는, 바로 그 소문.

시인 맹문재는 소문이 사실임을 증언한다. "`문학과지성'(이하 문지)이 73년부
터 80년까지 배출한 시인은 모두 12명이다. 이중 8명이 서울대 출신이었고, 그
8명 중에서도 불문학과와 독문학과 출신이 5명이다. `문지' 1세대인 김현, 김치
수, 김병익, 김주연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며, 그 중 세 명이 그 두 과 출신 아닌
가. 다른 예를 들수도 있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된 비평대상 작품들을
살펴보면 황동규, 오규원, 황지우, 정현종이 해마다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이것 역시 `문지'의 영향력이다. 심사자의 선호는 물론이고 당대 주요 평론
의 경향, 향후 작품활동의 유리함 등이 투고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
치는 것이다."그러고 보면 가끔 신문에서 예사롭게 처리하는 `서울대파' 혹은
`문지파' 등의 표현이 실감나게 다가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창비파(창작과
비평)', `미당사단', `황순원사단', `김동리사단'이란 표현 역시 심심찮게 나타
남을 알 수 있다. `중앙대 문창과파'도 이런 표현 가운데 속할 수 있다. 신들의
근친상간과 영원한 올림푸스 맹시인은 메타비평, 즉 비평의 비평을 "문학비평
이 사회 성원에게 전해진 의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우리 사
회의 메타비평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동원하는 개념은 `해석공동체'다. 보통 질
박하게 `문단 패거리'라고 비판하는 용어를 점잖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가 `해석공동체'를 거론하는 이유는, 대상에 대한 주체자들의 상호동화가
집단적인 전략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내면적인 소통이나 합의
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이는 자기 집단의 방법이나 이념에 대한
반성없이 그저 분파성을 조장할 뿐이다. 비평 불신론과 무용론이 대두한 이유
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소수 집단의 논리가 독자들에
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데 있다.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특정한 가치와 이
데올로기를 권위나 명망을 이용, 독자들에게 주입시켜 결국 해석의 비민주화
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공동체'의 문제는 비단 `문지'에게만 해당될까. `문지'와 함께
양대축을 형성하고 있는 `창비'는 어떨까.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
났다'가 많이 팔렸다. 많은 비평가들이 그 이유를 이념의 현실이 어쩌고 하
면서 설명하는데, 그게 과연 사실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문제를 다룬
몇 편의 시에 독자들이 몰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90년대에 맞는 연시(戀
詩)에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타당하다. 육체적이고, 감각적이며, 애정 표현
에 적극적인 여성의 목소리에 독자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창비'가 이런 얘기를 할 리는 만무하다. 비평가들의 평가는 창비의 목소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일 뿐이다. `창비'의 권위가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사상' 4권에 나타난 `창비' 얘기는 매우 흥미롭다."하지
만 `해석공동체'를 비판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문학과 삶이 관
계 맺는 방식에 대한 `문지'-`창비'의 입장차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이 가능할
까. "먼저 `창비', '문지'가 입장으로 드러내는 내용이 사회의 요구에서부터 비
롯된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단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한 집
단적 전략이란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창비'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민족문학론' 즉 `시민문학론', `리얼
리즘론', `제3세계문학론', `분단문학론' 등과 `문지'가 추구해온 `실존적 분석
주의', `초현실주의', `구조주의', `형식주의', `기호학', `누보로망론' 등은 지극
히 집단적인 이념이자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맹시인은 이렇게 전제를 깔아
놓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문지'는 창간호에서 순수-참여의 논쟁을 넘어
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이분법은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실천의 이
론화'를 주장하며 궁극적으로 `창비'를 비판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실 순수의 입장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실천의 이론화'는
외국문학 이론의 수용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면 한국문학의 외연을 확장했다
는 긍정적 의미도 있으나 악영향은 이보다 더 크다. 우리문학이 `식민지문학'
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품의 구성, 인물 특성, 문체가 서구와 동질화 되어
가고 있다. 이제 외국문학 전공자가 대학교수가 되고 비평가가 되어 우리 비
평계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 문학계에 독문학, 불문학 이론이 강세를 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지'
구성원들의 면면-김현, 김치수, 김주연, 오생근, 권오룡, 진형준, 정과리 등.
확연하지 않은가."한국 문단에 불문학 이론이 강세인 이유그는 또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한다. `문지' 시선(詩選)이 7년이 안 걸려 1백권에서 2백번까지 나
온 반면, `창비' 시선은 1백번이 91년에 이루어져 이제야 1백60번대에 이르렀
는 사실. "프랑스 쪽에서는 작품의 완결성보다 실험정신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
다. `문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의 90년대를 봐라. 세대론이 제기된 이후
갖가지 실험이 행해지고 있지 않은가. 옥석을 가릴 기준이 모호해진 것으로 볼
수밖에는 없다."반면 `창비'에 대해서는 다소 긍정적이다. 문학의 실천화와
대중화에 기여한 바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제기되는 `창비'의 오만함을 꼬집는 글들에 주목하고 있음을 내비
쳤다. `사회평론 길' 96년4월호에 실린 편집장 윤철호씨의 글, `월간 말' 9월호
에 실린 한일지 교수의 글, 이어 10월호에 실린 강준만 교수의 글, 황병하씨의
평론 등. 또한 조심스레 상업주의로의 침윤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덧붙인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자본주의 논리가 팽배하는 현실 속에서도 중심 문제는 존
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충실히 지면에 담아내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왜 `문지'와 `창비'만 얘기하게 되는 것일까. 두 계간지가 막강한 영향
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데, 과연 그 둘 말고는 없는 것일까.

80년대말, 90년대초 나온 잡지나 최근의 잡지 창간 붐과 `창비'-`문지'의 구도
를 연관시켜 파악 할 수는 없을까. "80년대 말에 창간된 잡지는 `창비'-`문지'의
구도에 힘을 실어줬다고 본다. 우리가 막연하게 `창비'의 계열로 `실천문학',
`시인', `노둣돌', `노동해방문학', `오월시', `시힘' 등을 드는 것이나 `문지'의
계열로 `우리세대의 문학', `시운동', `21세기 전망', `비평의 시대' 등을 드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창비', `문지'의 문제 의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스스로 그
체계에 포섭되었다고 판단한다."하지만 최근 창간된 잡지들은 뭔가 새롭다고
한다. 아류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맹시인이 주
목하는 것은 `한국문학평론', `당대비평'. 여기에다가 독자의 기대지평을 충족
시켜 베스트셀러로 떠오른다는 점에서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사상'을 덧붙인
다.

시대의 욕구가 어떻게 미적 가치로 반영되는가를 제대로 포착한다거나, 독자
적 실천 영역을 구축한다는 점, `창비'와 `문지'의 중간항을 선택하기보다 공
공 커뮤니케이션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 등이 각각의 특색이다.이 정도 얘기를
들어봤을 때 궁금한 점 하나. `중앙대 문창과파'를 보유한 중앙대의 신문에서
왜 이 부분을 기획으로 잡았을까. 그 명성은 이미 퇴락한 것일까. 기득권을 확
보하고 있다면 이런 문제가 튀어나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문학이 대중화
되기 이전, 그러니까 80년대 이전, 문단의 패권은 중앙대 문창과에 있었다. 우
리의 김동리 사단, 서정주 사단이 거의 모든 잡지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
나. 똑똑하다는 서울대 쪽이라든지, 문인을 많이 배출하는 경희대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만약 `해석공동체'의 존재 때문에 불이익이 있다면
자업자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겸손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문창과가 결코 문학을 하기에 나쁜 환경에 놓인 것
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어느 잡지를 뒤져 보거나 문창과 출신 작가의 글을 발
견할 수 있는 것이 한 예가 된다.`문지'에서 나온 김연경의 소설 `고양이의, 고
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의 선전문구는 흥미롭다. 작가 약력에 `대학
문학상' 수상을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 의혈문학상이라든가 전남대
오월문학상 같은 전국 규모의 대학상도 아마추어라는 입장에서 알리지 않는
우리 문단의 관행에서는 이해되기 힘든 부분이다. 서울대 문학역량은 전국 규
모를 넘어서는 것이 현실일까. 혹은 올림푸스산은 높다란 성채를 이미 구축했
기 때문일까.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홍기돈<국문학 박사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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