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들어온 지 이제 갓 1년이 된 신입사원. 나는 이제 직장인이다. 회사라는 표현이 어색했지만 공무원들도 회사라고 부른다. “우리 회사”
 
 지난 1년은 정말 빨리도 지나갔다. 정해진 시간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지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하지만 집에 갈 시간. 누구도 퇴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늘도 나의 야근은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은 정해진 시간 동안만 일한다고 누가 그랬는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야근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다. 쏟아지는 민원 전화와 끊임없는 회의, 시시각각으로 떨어지는 지시사항들에 근무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본연의 일을 시작한다. 맡은 사업들에 대해 고민하고 보고서를 써내려 가다보면 어느덧 11시가 다 되어간다. 보던 자료는 가방 속에 모셔 넣고 윈도우 종료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회사를 빠져나와 도착한 집. 녹초가 된 몸을 침대에 뉘이면 잠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하루가 시작됨을 느낀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처음 입사하고 느끼는 불편함에 나에게 던져진 질문. “내가 과연 몇 년간 버텨낼 수 있을까?” 내가 직면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던 중 어디선가 느꼈던 감정과 장면이 떠올랐다. 훈련소에 처음 입소한 훈련병 시절의 데자뷰. 예비역 선배들이 풍기던 ‘묘한’ 아우라는 회사의 과장님, 국장님들에게서도 느껴진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본 아우라는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진정한’ 아우라가 아님을. 쉽게 느끼고 볼 수 있는 이제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에게만 느껴지는 ‘묘한’ 아우라였다.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도 그 ‘묘한’ 아우라가 느껴질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의 답은 그렇게 찾아졌다. 하지만 곧 다음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지금 이 자리를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돌이켜 봐야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노력했던 것일까?
 
 답은 너무나 간단하게 나왔다. 나는 ‘회사원’이 아닌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부분에서 오해가 없길 바란다. 여기서 지칭하는 회사원은 일반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 아닌 회사원이면서 공무원이기도 하는 필자의 경우를 일컫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 선배의 말이 답이 되어줬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10년 쯤 지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거야.”
 
 지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공무원이 된다는 건 폭넓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녀노소 국민 모두를 고려하며 정책을 만드는 회사원이 공무원일 것이라고 말이다.
진짜로 10년이 지나면 나에게도 아우라가 느껴지고 세상을 보는 눈은 달라져 있을까
 
한두희 동문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 사무관 
사회학과 02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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