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이 깊어간다. 84년부터 중앙대에서 일을 시작하여 피아노와 씨름하며 보낸 그간의 세월이 실감나지 않는다. 
 
  피아노는 수천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88개 건반은 230여 개의 현을 가지며, 그랜드 피아노의 철골 프레임에 가해지는 장력은 수십 톤(t)에 이른다. 반면 페달의 기능까지 더하면 피아노의 음색은 0.003초의 찰나에 결정된다. 양손 54개의 뼈는 근육과 신경의 협동으로 움직이는데, 인간의 두뇌는 매우 큰 영역을 손에 할애하여 특히 손끝에는 고밀도의 촉각신경이 모여 있다. 독일의 의학자 마틴 바인만은 인간이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양손의 운동을 감지하는 신경회로가 발달하게 되었고, 이것이 성대와 언어의 발달로까지 이어졌으리라고 주장한다. 해마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을 따오는 젊은 장인들을 보면 한국인들의 손재주는 뛰어나다. 젓가락문화의 승리라는 말도 있다. 
 
  반면 인간의 귀뼈는 신체의 모든 뼈들 중에서 가장 작은 크기이다. ‘중이’에 있는 3개의 뼈는 두께 0.1mm인 고막에서 발생한 진동을 ‘내이’의 달팽이관의 청신경으로 전달하며, 중이에 연결된 유스타키오관은 중이내의 공기압과 외부의 공기압을 같게 유지시켜준다. 내이는 8개의 두꺼운 신경줄로 두뇌에 연결되어 청각 외에도 중력, 운동, 평형감각 등을 담당한다. 김연아 선수가 빙판에서 경기를 펼칠 때 분명 그녀의 귀도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이다. 
 
  북경인원의 유적을 최초로 발견한 프랑스의 종교인류학자 테야르 드 샤르댕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meme’(밈)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meme은 일종의 ‘문화유전자’로 인간행위의 ‘고양된 얼의 밀도’를 생물학적, 언어적 유전자가 아닌 ‘감성이나 직관’으로 타자에게 전달한다. 따라서 meme의 소통에 기여하는 음악은 ‘국경없는 언어’이자 인류의 미래에 직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의 ‘한류’에서도 meme적인 현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피아노전공 학생들은 대략 17세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학과 음악형식 등을 공부하며 당대의 천재라 일컬어지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배우고 익힌다. 우리와는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음표들의 암보와 테크닉적인 어려움에 더하여, 개개의 ‘특수언어’인 음악예술의 해석과 전달은 매우 어렵다. 
 
  ‘음악은 100으로 1을 만드는 작업이며 순도 99.9%의 마지막 0.1%가 승패를 좌우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음악행위가 늘 완성을 향한 ‘진행형’의 작업이기에 풀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듯 끝없는 탐구와 인내, 창조적 긴장이 필요함을 뜻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자 동시에 책임이다. 엄청난 수고와 노동에 비해 소위 ‘돈이 되지 않는’ 피아노를 선택한 그들에게 예술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그 꿈을 지켜주는 것이 선생의 할 일이다. 모든 학문의 완성은 자기와 세계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전제로 한다. 끊임없이 달을 가리키되 그 시선이 손가락을 보는데서 그치지 않아야 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이혜경 교수(음악학부 피아노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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