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점심시간이다. 식당에 가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종이에 작성하는데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 “떡만두국이에요, 떡만둣국이에요?”
 
 2. 오후 근무 중, 여러 사람이 회의실에 모여 심각하게 토론을 한다. “임상심리학박사로 할까요? 임상 심리학 박사로 할까요?” “임상 심리학 박사는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니까 임상심리학박사는 어때요?” “임상심리학박사는 가독성이 떨어지니까 임상 심리학박사로 하는 건 어떨까요?”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은 이렇게 말했다. “저술은 인간이 하고 편집은 신이 한다.” 그리고 나는 신의 영역이라는 편집을 직업으로 삼은 지 5개월이 지난 초짜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출판사에 입사했다. 
 
 처음 두어 달은 마냥 즐거웠다. 온종일 책을 읽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직장. 유명한 작가들과의 미팅. 아무도 읽어 본 적 없는 원고의 첫 독자가 된다는 설렘. 이곳이 바로 신의 직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짧은 신입 딱지를 떼고 편집자로서 본격적으로 책을 만들면서 맞춤법의 홍수에 휘말렸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맞춤법에 자부심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해 국어 시험에서 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었다. 나는 ‘않해요’나 ‘빨리 낳으세요’같은 말을 하는 맞춤법 파괴자들을 무식쟁이라고 욕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바로 내가 그 무식쟁이였다.
 
 대형 사고도 몇 번이나 쳤다. 하루는 내가 속한 편집부에서 책에 난 오타를 발견 하지 못해 3,000부를 그대로 폐기하고 다시 찍어내야 했다. 그때 난 오타는 ‘들어 주다’였다. 이야기를 듣는 것은 ‘들어 주다’로 쓸 수 있지만,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들어주다’로 붙여 써야 하는데, 띄어 써 버린 것이다. 결국 이 스페이스바 한 번의 실수로 몇천만 원이 증발했다. ‘수증기’를 ‘수중기’로 오타를 내고, ‘영역별로’를 ‘영역 별로’로 틀려 쓴 일도 있었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은 생각보다 많다. 작가가 원고를 주면 담당 편집자가 대여섯 번은 원고를 읽으며 맞춤법 교정과 윤문을 한다. 담당 편집자가 편집을 끝낸 원고는 다른 편집자들이 크로스 체킹을 하고, 편집장님, 때로는 사장님까지 원고를 본다. 똑같은 원고를 최소한 몇십 번 검토한다. 그렇게 몇 명이 달라붙어도 원고가 출판되면 이상하게 오타가 나온다. 그럴 때마다 편집자들끼리는 ‘오타가 자가 분열로 생성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그까짓 오타가 대수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타 하나에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달렸다는 생각을 하면 속이 쓰리다.
 
 나는 스페이스바 하나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오늘은 오타를 내지 않길, 오늘은 띄어쓰기 실수를 잡아내길 기도하지만 눈이 빠져라 모니터를 봐도 오타는 숨어 있다. 원고를 인쇄한 뒤에야 고개를 빼꼼 내민다. 스티븐 킹의 말을 이렇게 고치고 싶다. “저술은 인간이 하고, 편집도 인간이 한다."
 
진송이 동문
내인생의책 에디터 
정치외교학과 09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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